보유 중인 아파트 사업 부지를 팔고 시공권만 챙기는 건설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크게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미래 개발이익보다는 당장의 현금흐름이 중요해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자기 땅에 아파트를 짓는 자체사업을 시공권만 갖는 도급사업으로 전환하는 건설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주로 3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토지매입 자금이 들어간 아파트 사업 부지를 PFV(프로젝트금융 투자회사)에 매각한 뒤,시공권을 얻는 식이다.

대림산업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의 광교신도시 A7블록(12만7448㎡)을 '광교럭키세븐'이란 PFV에 약 5000억원을 받고 팔았다. 시공은 대림이 맡기로 했다. 광교신도시 청약경쟁률이 높게 나오면서 PFV는 쉽게 구성됐고 내년 3월 중대형 아파트 1970채를 분양할 예정이다. 광교신도시 한가운데 있는 이 땅은 남쪽으로 행정타운,북쪽으로 단독주택촌이 지어지고 신분당선 도청역이 바로 인근에 개통하게 된다. 대림산업측은 영동고속도로 동수원나들목과 용인~서울고속도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최상의 입지이지만 유동성 확보를 위해 부지를 팔게 됐다고 설명했다.

건설사는 아니지만 SK케미칼도 같은 방식으로 수원공장 부지(수원시 장안구 정자1동,32만6974㎡)를 3500채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작년 말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들어온 에코맥스라는 PFV에 4152억원을 받고 땅을 팔았다. 시공은 그룹 관계사인 SK건설이 맡게 됐다. SK건설 관계자는 "SK케미칼이 재무구조 개선 목적에서 땅을 팔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김포공장을 직접 개발키로 하고 CJ프로퍼티스란 시행사를 세운 CJ그룹과는 대조적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뚝섬 개발사업 중 하나인 '한화 갤러리아 포레'(뚝섬 1구역)도 시행사(인피니테크) 대신 PFV가 설립되면서 사업주체가 바뀌었다. 1구역 땅은 인피니테크가 원래 서울시에서 매입했지만 유동성 문제로 인해 채권단이 인피니테크를 밀어내고 '갤러리아포레㈜'라는 PFV를 설립,직접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공은 계속 한화건설이 맡고 있다.

'갤러리아포레㈜'란 PFV의 설립 소식은 바로 옆 3구역(한숲 e-편한세상)을 개발 중인 대림산업측에 기대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금융권에서 뚝섬 사업에 대한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평가해준다면 광교 사례처럼 'PFV 설립→땅 매각'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대림은 작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로 사업을 계속 진행하기 어려워지자 기존 계약자들과의 계약을 모두 취소해야 했었다.

대림은 이와 관련,330㎡의 대형으로만 설계된 주택형을 조정하는 내용으로 사업계획을 변경,내년 중 분양승인을 다시 받는다는 방침이다. PFV만 설립되면 대림은 매입가 3824억원의 땅을 현금으로 만들 수 있고 시공권은 계속 가져갈 수 있을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땅값 상승이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이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수천억원이 분양 때까지 땅에 잠겨 있는 것보다 이를 유동화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건설업체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자체사업은 도급사업보다 이익을 두 배 이상 남기지만 경기가 어려울 때는 땅에 매몰된 유동성을 회수하고 금융 기회비용을 줄이는 게 상책이란 얘기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PFV를 설립하면 시행사와 사업을 협력하는 데서 생겨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걱정안해도 된다"며 "시행은 PFV와 자산관리회사(AMC)가 맡는 구조이지만 개발사업의 노하우가 풍부한 시공사가 사업을 어느 정도 주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