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공공 주도의 재개발이 대세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계획을 짜고 토지를 수용하는 방식을 통해 개발 이익도 일부 가져간다. 이들 나라는 민간 주도의 재개발로 투기가 성행했던 과거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공영개발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이 때문에 재개발지역의 토지 소유자가 단기간에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을 수 없다.

선진국의 공영개발에는 지자체와 우리나라의 주택공사 · 토지공사 같은 공기업은 물론 비영리단체까지 참여한다. 미국에서는 지자체와 함께 커뮤니티개발공사(CDC),근린재투자공사(NRC) 등 비영리 지역주민 조직이 재개발사업을 주도한다.

영국은 1981년 도시개발공사(UDC)를 설립,중앙정부 지원하에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99년에는 낙후지역 재개발을 전담하는 도시재생공사(URC)를 만들었다. 일본의 재개발(도시재생사업)도 건설성의 도시정비정책을 근거로 세워진 도시재생기구,지방주택공급공사 등 공공법인과 민간단체가 맡는다.

이렇다 보니 개발 계획이 공공성과 공익성을 중심으로 세워져 원주민 정착률이 90~100%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조합과 건설업체의 수익성을 맞춰주기 위한 시혜성 용적률 상향이 적다 보니 재개발이 끝난 지역의 층고와 용적률이 낮다. 조합의 수익이 아니라 공익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공원과 상업 · 문화 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

슬럼 지역을 재개발해 1995년 개장한 프랑스 파리의 '베르시 공원'과 주변 아파트 단지는 공공이 주도한 성공적인 재개발의 단적인 사례다. 센 강변에 와인공장과 창고가 있던 곳이 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됐다. 과거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이전에 쓰던 창고를 리모델링해 쇼핑가와 식당가를 조성했다. 포도주공장 굴뚝도 그대로 남겨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 남부에 조성된 고급 주상복합타운 '배터리 파크'도 공공 재개발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뉴욕주 산하 공기업인 '배터리파크 개발공사'가 확보한 토지를 기업과 주민들에게 장기 임대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으로 공원과 학교 등 기반시설 설치비용을 충당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