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사업을 할 때 조합설립인가 이후 은근 슬쩍 시공비를 높이는 관행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서울행정법원 제2부(부장판사 한승)는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4주택재개발구역의 조합원 4명이 조합을 상대로 낸 '관리처분계획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또 관리처분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이달로 예정됐던 전용면적 59~135㎡형 120가구에 대한 일반 분양이 보류되고 이주 및 철거작업도 당분간 중단되는 등 아현뉴타운 건너편에 있는 아현4구역 재개발 사업이 전면 차질을 빚게 됐다.

아현4구역 조합은 2006년 8월 조합설립인가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공사비로 3.3㎡당 239만원을 책정해 75%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이후 시공사인 대형건설업체 A사는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했고 조합은 이를 받아들여 관리처분계획을 통해 396만원으로 올려줬다. 1년2개월 만에 시공비를 3.3㎡당 157만원,무려 65%나 인상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55%의 동의를 받았다.

법원은 이에 대해 "물가 변동이나 건축경기 변화를 감안해도 시공비 인상폭이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났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이 절반을 조금 넘는 55%의 조합원 동의율로 관리처분계획을 통과시킨 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또 "큰 폭의 공사비 인상 등 추가 분담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선 조합설립인가에 준하는 전체 조합원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원 판결에 따라 조합 측이 조합원 동의를 거쳐 설립변경인가와 관리처분인가를 다시 받아야 해 사업이 최소 6개월 이상 늦어질 것으로 마포구는 예상했다.

아울러 건설사들이 수주를 따내기 위해 일단 낮은 시공비를 제시한 뒤 나중에 사업을 추진하면서 조합 집행부와 협의해 공사비를 올렸던 관행에도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전영진 예스하우스 대표는 "건설사뿐만 아니라 조합 입장에서도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려면 전체 조합원 75%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공비를 낮춰 보고하는 게 관행적으로 되풀이돼 왔다"며 "나중에 관리처분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공사비를 증액하더라도 사업 속도를 위해 조합이 '경미한 계획 변경(과반수 동의)'으로 처리해왔다"고 설명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