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북새통'이었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3 · 9계 법정은 500여명이 넘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도 없었다. 입찰개시 전에는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법원으로 들어오면서 주차가 불가능할 지경이 되자 법원 측은 결국 경매법정 주변 입구를 막아 버렸다. 설날 이전만해도 텅텅비었던 경매시장은 전문가들조차 '오버히팅'을 우려할 만큼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경매정보지 판매업자인 김모씨(55)는 "불과 석 달 전에는 도통 사려는 사람이 없어 공짜로 나눠주는 일도 있었지만 요즘은 하루 60~70부가 너끈히 나간다"고 귀띔했다. 연초 너댓명에 불과했던 경매정보지 판매업자도 10여명은 족히 넘었다.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던 사람들도 국토해양부가 지금 중앙지법 경매법정을 방문한다면 당장 규제 방안을 내놔야할 판이라고 농담을 했다.

물론 법정을 찾은 수백명 모두가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교육을 받기 위해서나 분위기 파악을 위해 들른 경우도 많았다. 권오현 서울법무행정교육원장은 "오늘 50여명의 교육생과 함께 경매 현장을 방문했는데 실제 입찰에 참여한 사람은 두어명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법정 주변에는 경매 교육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았다. 경매 경험이 짧은 사람들이 많다보니 에피소드도 있다. 지난달 26일 경매에서 교육생 한 명이 수억원대의 아파트 입찰가를 단돈 9000원에 적어내 집행관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날 눈길을 크게 끌 만한 물건이 많지 않았는데도 응찰자들이 많아 결국 마감시간까지 늦춰졌다. 오전 11시10분까지 서류를 입찰함에 넣어야 했지만 집행관은 줄을 선 사람에 한해 기회를 줬다. 최종 응찰자는 모두 259명.눈치작전이 치열했다. 마감이 10분 가까이 연기됐는데도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마침내 거의 입찰서류로 가득찬 입찰함이 열렸고 6명의 직원이 바쁜 손놀림으로 서류를 정리했다. 법정 뒤편 사람들은 웅성거리는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며 집행관에게 큰소리로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

개찰은 11시40분에 시작됐다. 아파트와 다세대 · 다가구 단독주택 등 주거용 물건 49개 가운데 36개가 매각됐다. 입찰 경쟁률이 가장 높은 물건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파티오하우스 전용면적 222㎡형으로 43명이 경합을 벌였다. 집행관은 "응찰자가 너무 많아 매수 희망가를 모두 불러줄 수 없다"며 상위 3명의 가격만 불러줬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격)은 감정가 10억5000만원의 72%인 7억6121만3000원이었다. 2007년 낙찰가율이 100%를 오르내리던 점을 감안하면 그저그런 수준으로 보이지만 최근 주택시장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수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라이프라인 연립주택 전용 92.8㎡형은 감정가 이상으로 매각됐다. 입찰 경쟁률이 두자릿수를 기록한 물건이 6개나 나왔다. 모두 56건이 나와 1건만 낙찰된 지난해 12월8일 서울동부지방법원 경매 결과를 감안하면 요즘 분위기가 얼마나 후끈한지 짐작이 가능하다. 현장에 동행한 법무법인 산하의 강은현 실장은 "이렇게 사람이 몰리면 분위기에 휩쓸려 전문가들조차 생각 못했던 높은 가격을 써내기 마련"이라며 "경매의 최대 장점이 시세보다 싸게 산다는 것인데 일단 낙찰을 받고보자는 식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파 속에서는 '물건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게 나왔다'는 수군거림이 자주 들려왔다.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된 경매는 오후 1시가 돼서야 끝났다. 다음 주에 열리는 경매 정보지를 미리 사두라는 목소리가 복도에 퍼졌다. 서울 용산구에서 왔다는 강준영씨(27)는 "경기가 안 좋을수록 경매의 매력이 커진다"며 "경매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할 예정"이라면서 법정을 나섰다.

강은현 실장은 " 일부 경매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지만 부동산이 실물경기 침체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대세 상승기가 아니므로 입찰가격을 적어내는데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초에도 경매시장이 이상 과열됐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며 "전체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다가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