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3년 전 이맘 때.미국 남서부 애리조나주 피닉스를 취재한 적이 있다. 외국자동차 회사의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시승이벤트였다. SUV를 직접 운전하며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애리조나 사막을 두 시간 다녀오는 행사였다. 사막을 달리는 내내 저택단지들이 유럽의 고성처럼 나타났다.

피닉스는 건조한 사막지대다. 관절염을 앓는 노인들이 살기에 좋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돈 많은 실버계층을 겨냥해 여기저기 집이 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 1990년대 초에 피닉스 근처 선시티라는 실버타운의 성공담을 취재한 경험이 있기에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피닉스 도심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도 저택들이 지어지는 공사현장을 보고 "이렇게 많은 집들이 다 팔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3년이 지난 피닉스는 안 팔린 주택과 집값 폭락으로 가장 심각한 서브프라임(비우량담보대출) 도시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8일 워싱턴DC에서 피닉스로 날아와 대국민 주택담보대출 지원대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대대적인 지원으로 불사조란 뜻을 지닌 피닉스(Phoenix)와 같은 미국 주택공급과잉 도시들이 집을 팔아도 본전을 못 건지는 '깡통주택 도시'란 오명을 벗을지는 불확실하다.

우리나라도 울산 대구 부산은 물론 용인 등 수도권에도 '불꺼진 집'들이 늘고 있다. 미국 피닉스의 주택건설업체처럼 수요예측을 잘못한 결과다. 작년 말 현재 전국 미분양주택은 공식적으로 16만5599채.집계를 시작한 1993년 이후 최대다. 이 중 준공 후에도 안 팔린 주택은 4만6476채(수도권 1339채,지방 4만5137채).건설사가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하는 이런 집은 급증할 전망이다. 업체마다 그동안 미분양숫자를 줄여 보고해서다.

"어느 지역이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찍어주세요. "

지난 주말 한국경제신문이 개최한 수도권 미분양아파트 투자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은 강사들에게 투자유망지역을 지목해달라며 큰 관심을 보였다. 초저금리로 부동자금이 양도세 한시감면 방침으로 이득을 볼 미분양주택을 기웃거리고 있다. 모처럼 건설업계도 들떠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미분양 모델하우스를 구경해달라며 투자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 미분양 아파트를 구입,양도세 한시감면 혜택으로 300%의 투자수익률을 올렸던 서울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같은 결과가 재현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때는 서울에도 양도세 면제혜택을 준 데다 분양가격이 묶였지만 지금 미분양주택은 대부분 주변 시세보다 20~30% 비싸고 심지어 50%나 높은 곳도 있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소득을 창출하는 실물경제가 관건이다.

45조원 정도 묶여 있는 미분양주택 문제를 풀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당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도권에선 건설사가 먼저 고분양가를 내려야 한다. 3.3㎡당 1500만원을 넘나드는 고분양가를 내려야 수익을 쫓는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투자자가 외면하는 지방에선 국방부가 사들여 군부대 숙소로 활용하는 물량으로는 어림도 없다. 실수요자가 자신의 국민연금을 담보로 분양을 받을 수 있는 혜택 등의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