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SK케미칼연구소 터파기공사장 붕괴사고를 수사중인 경찰은 공사장 붕괴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찰은 붕괴의 원인과 함께 흙막이벽 및 복공판의 안전시공 여부, 사고 징후 사전 인지 및 조치 유무 등에 수사를 집중해 업체 측의 과실이 있는지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지반 약화의 원인

사고를 수사중인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16일 공사장 붕괴 원인 수사와 관련 "시공사인 SK건설 관계자들이 참고인 조사에서 '비와 소화전 누수로 지반이 약화됐다'고 붕괴 원인을 주장했다"며 "이 관계자들은 '(사고 직후 붕괴원인으로 SK건설 한 관계자가 지목했던)상수도관 누수는 원인이 아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SK 관계자는 상수도관 누수 주장은 접었지만 소화전의 누수를 제기하며 여전히 도로공사 업체에 붕괴 원인의 일부를 전가하고 있다.

경찰은 공사장 옆 도로를 개설하며 소화전을 매설한 삼성물산 관계자들을 불러 소화전 누수 여부에 대해 확인중이다.

도로공사 시행.시공사인 한국토지공사와 삼성물산 측은 사고 직후 "붕괴사고가 발생하며 소화전까지 쓸려가며 파손돼 물이 새나왔을 뿐"이라고 해명했었다.

공사장 토양의 하중을 흙막이벽이 견디지 못했다면 하중이 늘어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전히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토양 하중이 늘어난 데는 비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성남시에 따르면 사고발생 이틀 전인 13일 성남지역에 35.5㎜의 비가 내렸고 사고 당일인 15일 새벽에도 1㎜의 비가 내렸다.

그러나 SK케미칼연구소 공사현장 관계자는 "지난 13일 계측전문업체에서 비를 맞으며 실시한 지하수위(지반약화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면과 지하수면 사이의 거리)계측과 경사도(붕괴위험을 미리 알 수 있는 흙막이벽의 경사도)계측에서 이상이 없었다"며 계측 이후 붕괴가 진행됐음을 주장했다.

토목 전문가들은 그러나 "겨울철 해빙과 강우에 따른 지반약화를 감안해 설계를 해야 하고 사고 현장은 흙보다는 바위가 많아 지반약화를 붕괴의 직접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며 비와 해빙이 붕괴의 원인일 것이라는 추정을 부정했다.

◇흙막이벽 적정시공 여부
경찰은 흙막이벽과 흙막이벽 위에 설치됐던 복공판이 적정하게 시공됐는지를 외부 전문가와 함께 조사중이다.

복공판의 경우 하청업체인 은창ENC가 설치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사망자 3명은 모두 복공판에 얹어놓은 컨테이너사무실에 있다가 흙막이벽과 복공판이 한꺼번에 무너지며 추락해 숨졌다.

현장을 둘러본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이수곤 교수는 "무너진 면이 편마암 단층구조로 단층면이 30∼40도 공사장 쪽으로 기울어 있어 쉽게 붕괴될 수 있는 지질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따라서 흙막이벽부터 도로 쪽 편마암을 천공, 긴 쇠못을 박아 흙막이벽을 지지하는 어스앵커(earth anchor)의 길이를 늘이거나 숫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설계와 시공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조사에 나선 경인지방노동청 성남지청 관계자도 "어스앵커가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데 주목하고 있다"며 "어스앵커가 잘못 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복공판으로 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자주 드나든 것으로 봐 이들 장비가 복공판과 흙막이벽에 지나친 하중을 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붕괴 조짐과 대처
경찰 수사 관계자는 현장 책임자들이 붕괴 징후를 사전에 알았는지와 사고를 전후한 안전조치가 제대로 됐는지 여부도 주요 수사대상이라고 밝혔다.

사고로 부상한 한 인부는 "현장 관계자가 며칠 전부터 '(사고가 난) 벽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며 업체측이 위험을 감지했으면서도 공사를 강행했음을 주장했다.

다른 인부는 "긴급상황이면 사이렌을 울리든가 해 긴급 대피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데 그런 조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붕괴 직전 터파기 현장에 있던 중장비 기사들은 사고를 먼저 알고 자리를 피했고 사상자들은 사고 위험을 미처 알지 못했다는 인부들의 진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7년 11월 붕괴사고로 2명이 숨진 동탄신도시 주상복합건물 터파기공사장 붕괴사고와 관련, 경찰은 사고 2개월전부터 붕괴 조짐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땜질식 처방으로 공사를 강행하거나 부실하게 감사를 진행한 혐의로 현장소장과 감리회사 관계자 등 7명을 사법처리했다.

(성남연합뉴스) 최찬흥 김동규 기자 ch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