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구하신다고요. 값이 싼 매물 많으니 일단 상담부터 받아보고 가세요. 임대아파트라고 해서 보증금 떼일까봐 걱정하시는 분도 있는데 보호 조치까지 완벽하게 해드립니다. "

지난 14일 판교신도시 민영 임대아파트 인근 부동산중개업소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임대아파트의 경우 의무 임대기간(10년)에는 매매는 물론 계약서상의 정식 임차인이 아니면 세를 얻어 살 수 없기 때문에 거래를 주선할 거리가 없을텐 데도 대목을 맞은 듯 분주했다. 그 이유는 불법 전대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서판교에서 영업을 하는 A공인 관계자는 "햇빛이 하루종일 비치고 전망 좋은 아파트 76㎡형이 9000만원에 전세매물로 나왔다"며 "찾는 사람이 많아 금방 없어질 것 같으니 서두르라"고 부추겼다. 그러면서 대여섯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는 전세대기자 명단을 보여줬다. 또 다른 중개업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B공인 관계자는 "전세매물이 층별로 넉넉하니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집어줬다.

중개업자는 괜찮다고 하지만 임대아파트 전대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현행 임대주택법에서는 전대를 허용하지 않으며(19조) 불법 전대가 발생할 경우 임차권 소유자와 세입자는 물론 알선한 사람까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41조)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중개 현장에서는 공공연하게 거래가 이뤄진다. 지난해 12월 집들이에 들어간 부영사랑으로(371가구)와 올해 1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모아미래도(585가구),대방노블랜드(266가구) 모두에서 전대가 성행하고 있다.

전대가 성행하게 되는 이유는 전 · 월세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서판교 A2-1블록 한성필하우스는 109㎡짜리 전셋값이 1억3000만원 이상 호가하지만 바로 길건너 부영사랑으로 임대아파트의 경우는 9000만원짜리 전세물건이 나온다. 다른 임대아파트도 인근 시세에 비해 수천만원 정도 낮은 가격에 전세를 얻을 수 있다. 모아미래도 임대아파트의 '구경하는 집'에서 만난 김 모씨는 "불법인 줄 알지만 가격적인 매력이 커 와보게 됐다"며 "남들도 다 한다는데 굳이 피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임대아파트에서 전대를 받아 살게 되면 누구도 보증금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지 중개업자들은 확실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준다며 보증금 떼일 염려가 전혀 없다고 공언한다. C공인 관계자는 "정식 임대자의 재산에 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다.

불법 전대가 비일비재한 데도 사전예방과 단속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대사업자인 건설업체가 하는 일이라고는 아파트단지에 전매하면 안 된다는 안내문을 부착하는 일과 잔금을 치르고 열쇠를 내줄 때 정식 임차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정도에 그친다. 전대사실이 적발되면 임대차계약을 강제 해약(퇴거)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형편이다. 일선 중개업자들은 전대 당사자들에게 "관할 관청(성남시청) 어디에서도 단속을 벌인 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할 정도다.

주택업계 관계자는 "임대아파트 전매가 워낙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임대주택법이 사문화된 것 아니냐는 착각까지 들게 한다"며 "문제가 해결되려면 정부가 먼저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판교(성남)=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