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11만가구 넘게 쌓이면서 경영난이 심각한 중소 건설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시공능력 평가순위가 45위인 진흥기업과 121위인 온빛건설이 각각 효성그룹과 중견업체인 신창건설에 인수된 것은 건설업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분양 사태로 업계 순위 120위인 우정건설이 지난 1일 최종 부도처리되는 등 주택사업비중이 높은 중소업체들을 중심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사례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돼 상당한 파장이 우려된다.


◆M&A시도 잇따를 듯

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효성그룹에 전격 인수된 진흥기업도 지방 미분양 아파트로 인한 유동성 위기가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평가다.

진흥기업은 원래 관급공사에 강점을 지닌 업체지만 최저가낙찰제로 수익성이 떨어지자,2002년 이후 주택시장에 '올인'했다.작년 11월에는 아파트 브랜드(루벤스)를 새로 내놓기도 했다.하지만 부산,광주 등에서 미분양이 심해지자 부도 직전까지 몰린 끝에 결국 효성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그동안 시장에서 우려를 사왔던 '미분양발(發) M&A'의 신호탄이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자금이 탄탄한 건설업체와 새로 건설업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지방 사업장이 많은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M&A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강하다.예컨대 쌍용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군인공제회나 아주그룹,동국제강,오리온 등은 쌍용건설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가능성 있는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인수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

중견 건설업체들도 주택사업 이외의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해 M&A 시장에 적극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공공부문의 '최저가 낙찰제' 및 민간부문의 '분양가상한제'로 마진폭이 줄어들고 있어 건설업체들은 자체적으로 몸집을 불려 나가기보다는 필요한 사업부문을 가진 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순위 86위인 신창건설이 지난 2일 121위인 온빛건설을 인수한 것은 사업다각화를 위한 M&A의 대표적인 예다.

온빛건설은 과거 정태수 회장이 이끌었던 한보그룹의 계열사로,공공공사 및 해외건설 실적이 많아 신창건설 외에 관급공사 확대를 계획하고 있는 한화건설과 이랜드건설 등도 눈독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또 일신건설산업이 지난달 25일 타일.콘크리트 제조업체인 동서산업을,남광토건이 대경기계기술을 각각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택전문업체는 인기 없어

반면 주택사업 비중이 80% 이상인 주택전문업체들은 현재 상황에서는 인수할 만한 메리트가 없어 M&A 시장에서도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강하다.아파트 사업은 공공공사와 달리 과거 실적이 중요하지 않은 데다 기술력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택전문업체들은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리면 그대로 문을 닫고 좌초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부도처리된 일반건설업체는 신일,세창,세종건설 등 주택사업에 주력했던 업체들을 합쳐 모두 120개사에 달한다.이는 전년(106개)보다 13.2% 늘어난 것이다.건설교통부는 전문건설업체들까지 합치면 작년에만 314개 건설업체가 문을 닫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주택전문업체들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금융권 관계자는 "건설사에서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레미콘 공장 등 하도급 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례 등을 파악하는 식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신용정보 제공업체 중앙인터빌 한치호 이사는 "그동안 분양시장이 호황일 때 여유자금을 많이 쌓아놓은 업체들은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버틸 수 있겠지만,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갈수록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