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신내 근처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지난해 C은행의 D과장에게 병원 건물 한채를 사 달라고 요청했다. 시가 40억원짜리 빌딩을 구입하는 동안 한번도 모습을 비치지 않던 A씨는 최종 허락을 받기 위해 찾아온 D과장에게 "알아서 잘 했겠지"라는 한마디만 던지고 계약서에 선뜻 도장을 찍었다. 실제로 PB업계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사례다. '통 크게' 투자하고 실패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이같은 사례야말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큰손들의 부동산 매매패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엘리트 거부(巨富)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들은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수익률을 꼼꼼하게 분석한 뒤 철저하게 돈이 될 만한 물건에만 투자한다. 감각 하나만 믿고 투자를 결정하던 기존 큰손들과는 딴판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30억여원짜리 상가건물을 매입한 50대 중반의 B씨가 대표적이다. B씨는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학자다. B씨가 F은행 G팀장을 찾아온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F은행에서만 1백억원 가까이 굴리고 있던 B씨는 당시 연 4.7% 수준인 예금금리보다 높은 연 7∼8% 수준의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기를 원했다. G팀장이 '발이 닳도록' 뛰어다녀 적당한 물건을 찾는데만 1개월 이상 걸렸다. 이어 감정평가법인의 컨설팅을 받아 예상 투자수익률과 유동인구 등 각종 자료를 뽑는데 또다시 한달 이상의 기간이 소요됐다. G팀장은 "최고 지식인 그룹에 속하는 이 고객의 경우 상가매입 과정에서 은행 관계자의 진을 쏙 빼놓을 정도로 꼼꼼하게 챙겨 몹시 힘들었다"며 "현재 최종 선택만 남은 상황인데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일선 PB들은 "소액 투자자들도 이같은 엘리트 거부들의 과학적인 투자방식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지만 이들이 투자과정에서 들이는 정성의 상당 부분이 법의 맹점을 최대한 활용,세금을 한푼이라도 덜 내려는 절세(혹은 탈세) 요령과 관련돼 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PB들도 떨떠름해 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