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창동 K씨주택"은 인정이 넘쳐난다. 집주인이 아닌 사람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집이다. 북한산 산줄기를 따라 펼쳐진 평창동 고급 단독주택가에 들어선 K씨주택은 기존 주택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개방성이 특징이다. 폐쇄성 강한 고급 주택단지에서 이처럼 마음편히 사람들을 받아들이도록 문이 열려있다는게 돋보인다. 맑은 공기와 수려한 산수가 특히 아름다운 동네 평창동.하지만 이런 산수와는 달리 동네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어느새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다양한 자태로 한껏 멋을 부리며 기세좋게 들어선 저택들이 방문객들을 주눅들게 하기때문이다. 한참을 돌아다녀도 굳어진 어깨는 풀리지않는다. 평창동 K씨주택 역시 건물 외형만보면 이런 범주의 주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과다하게 강조한 중후함과 권위가 흘러넘친다. 3m가 넘는 높다란 옹벽위에 미국식 저택을 본뜬 붉은 벽돌주택에서 따스한 정감이 배어나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뾰족한 삼각지붕과 사각형 창문을 중첩시킨 외관에서는 온화함보다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무거움이 강하게 묻어난다. 넘치는 중후함을 해소하기 위해 2층 중간에 부드러운 반원형 창문을 배치했으나 전체적인 경직성을 중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건축주와 건축가 모두 설계 당시엔 평창동이 갖는 동네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새롭게 탈바꿈했다. 이미 지어진 외관을 바꿀 수는 없지만 실내.외 조경과 인테리어를 통해 집의 전체 분위기를 뒤집었다. 높은 위치에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함을 털어내기 위해 군데군데 생긴 틈새공간에 단아한 맵시가 묻어나는 소나무를 정교하게 배치했다. 입구 계단쪽에는 머리를 스칠 듯한 정갈한 소나무가 팔을 벌리며 방문객을 반긴다. 1층에 올라서면 거실앞 화단에는 이름모를 화초들이 6월의 향취를 가득 내뿜고 있다. 중후함과 경직성을 털어내기 위한 집주인의 치밀한 노력이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결국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고 갇혀있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다행이 K씨주택은 이런 요소들을 개방하고 있다. 집을 대하는 집주인의 마음가짐도 크게 변했다. 이 같은 변화로 K씨주택은 새로운 가치를 지닌 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집은 이제 사람들을 맘 편하게 받아들이는 다정한 집으로 변해있다. 영화를 찍거나 드라마를 촬영하는 공개장소로도 과감히 내놓고 있다.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완전히 개방을 한 것이다. 일정기간 임대를 원하는 사람에게도 국적 불문하고 언제든지 문을 열어놨다. 집을 꼭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도 흔쾌히 호응한다. K씨주택의 내부는 다행히 외관에서 풍기는 중후함보다 다소 덜하다. 이로써 외부 변화가 실내 분위기와 쉽게 보조를 맞췄다. 1층엔 개방성이 강한 벽난로를 갖춘 거실과 집무실,주방과 식당이 놓여있다. 외부 손님들과 자연스런 만남이 이뤄지도록 하기위한 공간 배치다. 거실은 가족용과 손님 응접용으로 나눠놓았다. 응접용에는 벽난로을 놓고 바로 옆에 집무실을 뒀다. 가족용과 응접용 거실공간 사이엔 가변 칸막이가 놓여있다. 손님이 많을 땐 칸막이를 터서 홈파티까지 가능한 대형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다. 공간의 실용성이 돋보이고 동선배치도 무난한 편이다. 1층 오른쪽에는 식당과 주방이 배치됐다. 로비를 사이에 두고 거실과 식당공간으로 나눠졌다.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게 식당을 남쪽에 놓여지게 한 것도 사람들을 위한 자상한 배려로 보인다. 방문객과 어울림이 이뤄지는 공간으로는 식당도 빠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2층은 집주인 가족들의 사생활 공간.침실 작은방 등이 놓여있다. 1층의 공동공간과 분리해서 정숙함이 배어나도록 꾸며졌다. 앞쪽으로는 아기자기한 창문을 터서 멀리 아름다운 풍경이 흘러들게 했다. 모든 침실은 남향 배치를 통해 따스한 햇빛의 온기가 끊임없이 전달된다. 평창동 K씨주택은 한번 만들어진 집은 어쩌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꾼 이색 사례로 꼽힐 수 있다. 집주인의 생각과 손질에 따라 얼마든지 명품주택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집이기도 하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 -------------------------------------------------------------- 건축메모 규모:대지면적-121평,연면적-98평,건축면적-79평,지하1층.지상2층. 위치:서울시 종로구 평창동,구조-철근콘크리트조. 설계:자연과 공간 김용환 소장(031)242-0833. 시공:웨스빌 하우징(02)557-0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