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광토건이 워크아웃이라는 험난한 과정에 빠져든 것은 지난 99년 2월. 외환위기의 한파로 건설경기가 꽁꽁 얼어붙은데다 한보철강 미수금과 쌍용자동차 부채(5백억원)등 엄청난 규모의 부실이 누적되면서 98년 11월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인 2월에 워크아웃이 최종 확정됐다. 워크아웃 결정과 함께 곧바로 뼈를 깍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97년말 7백여명에 달했던 인력을 99년말 3백여명(40%)으로 줄였다. 남은 직원들의 임금인상도 모두 동결됐다. 임원들은 상여금을 전액 반납했다. 이 회사는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기전 국내에서 손꼽히는 도로 철도 등 관급 토목공사 전문기업이었다. 그러나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입찰제한에 묶여 일체의 관급공사 수주활동을 할수 없게 됐다. 그래도 그냥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동안의 공사 기술력을 무기로 재무상태가 양호한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공사수주에 참여했다. 회사의 자구노력과 수주전략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채권단의 호의적인 지원도 어어졌다. 98년 11월에는 2002년말까지 채무상환을 유예받았다. 당좌대출 등 단기대출금도 2002년말까지 일반자금 대출 등 중장기 대출로 전환됐다. 1천84억원에 이르는 출자전환도 이뤄졌다.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차입금리를 기존 11%선에서 5%대로 낮춰줬다. 쌍용양회도 CB(전환사채) 30억원을 출자전환형식으로 인수해줬다. 한아름상호신용금고와 하나은행은 98억원과 29억원을 각각 출자전환,채무재조정을 실시했다. 이처럼 안팎으로 상황이 호전되자 외환위기이후 주택경기가 바닥권을 맴돌때도 신규 주택사업에서 큰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99년 3월 용인 보라지구에서 선보인 1천5백95가구 규모의 대단지가 무난히 분양에 성공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이어 일산 풍동(2백83가구),서울 삼성동 쌍용플레티넘 등 7개 단지 2천8백여가구를 90%이상 팔아넘겼다. 경쟁력을 갖춘 토목분야수주도 불경기가 무색할 정도로 잘 풀려나갔다. 99년엔 조달청 발주공사 공공공사 수주부문에서 4위,작년에는 2천3백31억원의 수주고를 올려 2위로 올라섰다. 올해도 지난 10월 온양온천-장항간 철도 노반공사 3개구간(2천억원)을 거머쥐었고 11월말엔 당진-대전간 고속도로 9공구(1천19억원)를 따내 총3천1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로인해 워크아웃 이듬해인 99년말엔 1백14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작년에는 부실채권 2백24억원을 대손처리하고도 7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차임금도 급감했다. 98년 3천5백42억원이었던 것이 99년 2천13억원,지난해엔 2천8백82억원,지난 9월말엔 98년 대비 70%가 감소한 1천1백76억원으로 줄었다. 매출신장으로 주가도 워크아웃 당시 1천원대에서 6천원대로 6배나 뛰었다. 덕분에 액면가 5천원으로 출자전환을 했던 하나은행은 2년만에 큰 폭의 투자수익을 올릴수 있게 됐다. 이로써 남광토건은 워크아웃 자율추진기업으로 선정됐으며 내년 상반기중 무난히 워크아웃을 졸업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