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위, 이틀전 '정치적 해법' 주문…'거부'·'수용'이 가른 희비
이의 제기 빌미될 수도…'만장일치?' 질문에 윤리위원장 말 아껴
'정치적 해법' 안받은 金, 사실상 공천배제…자진사퇴 太는 선처
잇단 설화로 논란을 빚은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10일 중앙당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으면서 사실상 내년 총선 공천이 불가능해졌다.

윤리위 징계 결정을 앞두고 최고위원직을 사퇴, 몸을 낮춘 태영호 의원은 당원권 정지 3개월의 징계로 비교적 '선처'를 받았다.

김 최고위원은 당원권이 내년 5월에야 회복된다.

따라서 상황 변동이 없다면 같은 해 4월 총선에 국민의힘 소속으로는 공천받을 수 없다.

태 의원은 오는 8월 징계가 풀리는 만큼,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공천에 다시 도전해볼 여지가 생겼다.

두 사람 희비가 엇갈린 것은 자진 사퇴 여부 때문으로 보인다.

김 최고위원은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전광훈 목사 우파 천하통일', '제주 4·3은 격이 낮은 기념일' 등의 논란 발언으로 징계 대상이 됐다.

태 의원은 제주 4·3 관련 발언과 더불어민주당 돈 봉투 의혹 관련 'Junk(쓰레기) Money(돈) Sex(성)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라고 쓴 SNS 글, 대통령실 공천개입 논란을 부른 '녹취록 유출' 파문으로 윤리위에 회부됐다.

윤리위 가동 초반에는 김 최고위원보다 태 의원 징계 수위가 낮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태 의원 4·3 발언의 경우 '역사관'의 영역이라 징계 대상이 되기에는 애매하다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천 개입 의혹 녹취 파문이 터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녹취 파문이 대통령실과 당에 모두 부담을 주면서 태 의원이 '가중 처벌'로 김 최고위원보다 더 무거운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정치적 해법' 안받은 金, 사실상 공천배제…자진사퇴 太는 선처
이에 태 의원은 징계 결정을 앞둔 이날 오전 최고위원직 자진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8일 윤리위 회의 후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징계 결정 전 자진 사퇴할 경우 양형 사유에 반영되나'라고 묻자 "만약에 그런 어떤 '정치적 해법'이 등장한다면 거기에 따른 징계 수위는 여러분이 예상하는 바와 같을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자진 사퇴라는 '정치적 해법'을 통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일 경우 징계 수위를 낮춰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는데, 태 의원은 이를 고려해 선제적 자진 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태 의원의 '정치적 해법' 수용 행보는 결과적으로 윤리위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윤리위 회의 직전 윤리위 부위원장인 전주혜 의원은 "정치적인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사퇴 표명은 징계 수준을 정하는 데 당연히 반영될 것이라 생각하고 저도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 후 황 위원장은 '태 의원 사퇴가 양형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고 말해 자진 사퇴가 비교적 낮은 수준의 징계로 이어졌음을 시사했다.

'만장일치로 결정됐느냐'는 질문에는 "이야기할 수 없는 내부의 (문제) 그 정도로 하자"며 말을 아꼈다.

다만 윤리위 회의에서 위원들 간 '격론'이 벌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징계 수위에 전반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의미로 보인다.

윤리위의 '정치적 해법' 주문을 수용하지 않고 버틴 김 최고위원은 무거운 징계를 받게 됐다.

'괘씸죄' 이야기도 나온다.

두 사람의 자진 사퇴를 모두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태 의원의 사퇴 선언에 지도부는 최고위원 공석 리스크를 일부 덜어냈다.

이에 지도부 관계자는 "윤리위에서 가장 최적의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윤리위가 징계 결정 전 자진 사퇴를 압박하고, 실제 결과에도 자진 사퇴 여부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향후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윤리위가 미리 힌트를 주고, 자진 사퇴를 통해 일종의 거래처럼 징계 수위를 결정한 것은 나중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당사자가 문제 삼을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