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제로페이 사용을 권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한경DB
지난해 가을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제로페이 사용을 권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한경DB
소상공인 수수료 절감을 목적으로 정부 주도로 도입된 간편 결제 시스템 ‘제로페이’가 휘청거리고 있다. 코로나19 기간동안 온누리상품권과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에 의존해 수익을 냈는데, 서울시가 올해부터 제로페이와 결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제로페이 운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상품권 판매 대행소'된 제로페이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3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제로페이 누적 결제 금액은 4조4916억원이다. 그중 87.3%가 온누리상품권이나 지역사랑상품권과 같은 각종 상품권을 통한 결제 실적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최대 10% 할인발행으로 유인한 상품권 매출이 대부분인 셈이다. 애초의 기획 취지에 맞는 일반 직불 결제 실적은 12.7%로, 그 중 4.3%는 법인카드 직불 결제였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 부담을 절감하기 위해 중기부가 도입한 QR코드 기반 간편 결제 시스템이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1호 공약’으로 추진했고,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주도하고 서울시가 밀어주면서 전국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매출 8억원 미만은 0% △8~12억 0.3% △12억 초과 0.5% 수수료를 받는다. 중기부와 서울시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제로페이에 투입한 금액은 총 581억4800만원이다. 가맹점에 QR키트를 지급하는 등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로페이를 홍보하기 위해 들어간 비용이다.
지난해 가을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제로페이 사용 가능 매장을 알리는 홍보물이 놓여 있다.  /한경DB
지난해 가을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제로페이 사용 가능 매장을 알리는 홍보물이 놓여 있다. /한경DB

◆소상공인 혜택은 특정 지역 한정

하지만 소비자들이 카드 대신 제로페이를 사용하도록 할 만한 유인책이 부족했다. 제로페이 이용시 결제금액의 40%가 소득공제 되도록 하는 세법 개정이 무산되면서다. 애초의 취지와 달리 ‘상품권 판매 대행소’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코로나19 기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제로페이를 통한 온누리상품권과 지역사랑상품권 구매 현황은 △2019년 187억원 △2020년 1조889억원 △2021년 2조6843억원까지 급증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동네상권 뿐만 아니라 학원 등에서 활용되면서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도입 취지와 다르게 활용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지역사랑상품권 판매 규모가 급증했지만 혜택을 받는 소상공인은 한정됐다. 정부 예산을 투입해 제로페이 가맹점은 152만 곳까지 확장했다. 그 중 96만4363곳(63.1%)은 결제 실적이 ‘0원’이다. 제로페이를 도입한 소상공인 10명 중 6명 이상은 한 번도 제로페이로 매출을 내본 적이 없다는 의미다. 지난해 결제 실적이 ‘0원’인 가맹점 비중은 55.3%였다.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한국간편결제진흥원 관계자는 “가맹점은 전국적으로 늘어났는데 지역사랑상품권은 서울 경남 강원 등에서 집중적으로 판매되면서 혜택을 받는 소상공인도 이들 지역에 한정됐다”고 설명했다.

◆지역화폐 예산 삭감에 수익성 우려

수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서울사랑상품권의 판매대행사가 제로페이에서 서울페이플러스로 변경되면서 제로페이 운영재단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의 수익은 곤두박질쳤다. 2020년 78억원까지 늘어났던 당기순이익은 올해 상반기 1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한결원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최근 민간 결제사들에게 운영비용 분담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SSG페이, 스마일페이, 엘페이 등은 분담금 납부를 거부하며 제로페이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제로페이가 의존했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은 앞으로도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최근 2023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은 지난해 1조522억원에서 올해 6050억원으로 감소했다가 내년 정부안에서는 0원이 됐다. 한 의원은 “제로페이가 기생하던 지역사랑상품권이 사라지면서 제로페이와 한결원은 갈피를 잃은 상태”라며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미명아래 누구도 혜택을 가져가지 못하고 있는 제로페이의 새로운 역할과 과제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