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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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같은 국회의 '검수완박' 논의에 정작 국민이 빠져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지만, 국회도 공당(公黨)을 자처하는 여야 각 정당도 말뿐이다. 이점이 한국 정치의 퇴행적 후진성을 한 번 더 확인시켜 준다.

수사·기소·처벌은 국가유지 기본, 국민합의 없이 누구 맘대로

기형적 검수완박 법제화에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국가의 형사법체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다. 쉽게 말해, 주요한 범죄 행위를 누가 찾아내고(수사) 누가 법원에 데려가(기소) 처벌을 받게 할 것인가 하는 국가시스템에 관한 문제다. 직접 처벌권이 합법적으로 주어진다는 차원에서 국가는 의당 가장 강력한 사회단위다. 국가의 이름으로 범죄행위를 법에 명시해두고, 이 규율을 명시적·구체적으로 위반했을 때 국가는 객관적 증거를 수반해 독립된 법원에서 처벌받게 한다. 죄형법정주의와 증거주의에 입각한다. 이때 누가 범죄 행위를 적발하고 증명하며, 누가 법원에 세우느냐(기소)가 중요하다. 현대국가의 형사법체계다. 나라마다 약간씩 다르기도 하지만, 한국 헌법은 법정에 범죄혐의자를 세울 수 있는 공소 권한을 2200명의 검사에게 부여하고 있다. 기소독점주의(형사소송법 246조)다. 이 기소권만 형식적으로 남긴 채 수사권은 검찰에게서 뺏겠다는 게 더불어민주당이 사활을 걸다시피 한 법 개정안이다.

‘제왕적 대통령’ 개헌 논의에 가려진 것, 국회 권력 비대는…

검수완박 법 개정에서 재확인되는 중요한 포인트는 기형적 한국의 의회, 대한민국 국회의 힘이다. 근래 10여 년 이상 간헐적으로 계속된 개헌론의 주요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이런바 '제왕적 대통령'이 그런 개헌 주장의 전제였다.

돌아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이 의미 있는 계기였다. 현직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큰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인사권, 예산권, 국군통수권, 법안 제안 및 거부권, 특별사면권 등으로 한국의 대통령 권한이 큰 것은 사실이다. 집권 여당의 공천권 행사로 국회의 구성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중앙 정부과 지방자치단체는 행정 권한의 차이만 있을 뿐, 권력과 지위에서 특별한 우열이 없다. 하지만 지자체장의 선거와 지자체 예산 등에도 의지를 미칠 수 있다. 지금의 사법부를 보면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에 대한 인사로 사법부에도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헌법에 따른 국가기관, 즉 독립적 헌법 기구인 선거관리위원회나 감사원도 독립성을 의심받는 게 지금 현실이다. 전체적으로 3권분립에 따른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정교하게 나타나기 어렵게 돼 있다.

그렇다면 제왕적 권한은 대통령만인가. 그렇지 않다. 국회도 제왕적 국회다. 국회의 법률상 권한은 가히 특권이라고 할 만한 게 많다. 대표적인 것이 불체포 면책 특권이다. 이른바 의정활동과 관련해서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는다. 이런저런 금전적 혜택이나 우대는 신분적 특권과 차원이 다르다. 국회의원이 받는 급여를 세비(歲費)라고 하는 것부터가 특권적이다. 말하자면, 스스로는 월급생활자가 아니라는 것인데, 이른 용어부터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도, 국회도 제왕적이다. 나아가 행정부 공무원과 사법부까지 제왕적 권한을 누리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어디에서 일하든 관(官)이 문제다. 통틀어 '제왕적 공직'이 문제인 셈이다. 관존민비(官尊民卑)라는 전근대 중세적 가치가 한국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게 근본 문제다. 공복이니 '국민을 섬긴다'는 것은 말뿐이다. 이게 바뀌어야 한다. 적극 바꿔야 한다.

국민 무관 공직끼리의 권력 나눠먹기 막기, 선거뿐인가

선출직을 비롯한 입법·행정·사법의 공직 스스로 개혁이 기대난망이라면, 그 길은 역시 선거뿐이다. 대선이든, 국회의원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선출직을 잘 뽑는 게 이래서도 중요하다.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숱한 개헌론도 의미 없다. 잘못되면 개헌도 권력의 공직 내 위치이동일 뿐이다. 국민에 절실한 것은 공직끼리의 권한 나눠 먹기가 아니라 공직의 권한 축소다. 아직 진행형인 검수완박의 교훈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