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사진=뉴스1
‘선거 고액 단타 과외 선생’, ‘킹 메이커’, ‘해결사’….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합류하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붙는 별칭이다. 그는 제11, 12, 14, 17, 20대 국회의원 5선 모두 비례대표를 지낸 특이한 정치 이력을 가졌다. 좌우·여야 정당을 넘나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마다 각 정당들은 그에게 구애를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그의 정치 이력은 보수 정권에서 시작됐다. 1980년 신군부 국가보위입법회의 전문위원을 지낸 뒤 이듬해 민정당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1987년 헌법 개정 때는 이른바 ‘경제 민주화 조항’을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노태우 정부 때는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 경제수석도 역임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 때는 정치 행로를 바꿔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됐다.

그가 ‘전략가’로 선거판에 본격 뛰어든 것은 2012년 대선을 준비하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기 시작하면서다. 2011년 정치권에 혜성 같이 등장해 전국 순회 ‘청춘 콘서트’로 정치적인 주가를 한창 올리던 안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와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안 대표가 김 전 위원장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김 전 위원장은 ‘안철수의 멘토’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후 2012년 9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제안을 받고 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았고 2016년엔 4·13 총선을 3개월 정도 앞둔 1월 민주당에 합류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는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다고 했다. 문 대표는 위기에 몰렸다. 의원들이 탈당한 안철수 의원을 뒤따랐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 체제를 물려받았다.

민정당→민주당→새누리당→민주당→국민의힘

문 대표가 물러났지만 실질적으로 뒤에서 권한을 행사하고 김 전 위원장은 관리형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차르(구러시아 황제)’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전권을 휘둘렀다. 이해찬 전 총리, 정청래 의원 등을 공천에서 쳐냈다. 위기감을 느낀 최대 계파 친노(친노무현)계의 견제가 시작됐다. 그러자 김 전 위원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구기동 자택 칩거에 들어갔다. 문 대표가 경남 양산 자택에서 급히 서울로 올라와 설득했고 김 전 위원장은 당무에 복귀했다.

2020년 다시 선거판에 돌아왔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직함을 달고서다. 황교안 당시 통합당 대표의 ‘삼고초려’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늦었다.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들어온 그는 “의석 과반을 확신한다”고 자신했지만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선거 패배 뒤 그는 당내 거센 찬반 논란 끝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고 지난 4·7 재·보선 승리에 기여했다.

그가 좌우 여러 정당들을 두루 섭렵한 이력도 특이하지만 항상 ‘뒤끝’이 좋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안 대표가 지난해 정치권에 다시 등장한 이후 “(안 대표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정치 활동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 “이분이 정치를 제대로 아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뜬 적이 있다”고 하는 등 늘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에도 둘 사이는 틀어졌다. 대선 직전 대기업 순환 출자 해소 문제로 부딪친 게 직접적 요인이었다. 김 전 위원장이 대기업의 기존 순환 출자도 해소해야 한다는 데 대해 당시 박근혜 후보는 “신규 출자만 규제하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김 전 위원장은 “내가 공약을 책임지면서 준비했는데 나와 사전에 한마디 의논도 없이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순환 출자 규제)를 안 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 당신이 싫다면 내 갈 길을 가면 그만”이라고 따졌다(자서전 ‘영원한 권력은 없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완전히 틀어졌다. 2016년 민주당 비대위를 이끌고 총선 승리를 견인했지만 친노의 견제로 결국 김 전 위원장은 당을 떠났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가 끝나자마자 김 전 위원장과 국민의힘 당 주류 세력 간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 전 위원장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윤석열 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손을 내밀면서 ‘킹 메이커’ 역할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국민의힘 주류도 윤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영입 판 만들기에 나서면서 그를 사이에 두고 양측이 ‘쟁탈전’을 벌였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향해 ‘아사리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을 겨냥, ‘노욕에 찬 기술자 정치인’, ‘희대의 거간 정치인’이라고 공격했다. 김병준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은 김 전 위원장이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 “(윤 후보가) 어마어마한 돈의 뇌물을 받은 전과자의 손을 잡겠나”라고 했다.

“윤석열, 검찰 리더십 고수하다 호된 교훈 얻어”

이런 구원(舊怨)이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문제를 놓고 지루하게 벌어진 갈등의 뿌리다. 윤 후보의 구상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김병준 선대위원장’ 체제였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을 공격한 김 위원장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뜻이 확고했다.

윤 후보가 자신을 ‘노욕’이라고 빗댄 장제원 의원을 후보 비서실장으로 삼는 데도 강하게 반대했다. 장 의원은 뜻을 접었지만 김 위원장은 그대로 버텼고 윤 후보도 그에게 힘을 실어 주는 바람에 김 전 위원장은 쉽사리 선대위에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김종인 키즈’로 불리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하려면 프리미엄을 더 얹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윤 후보 측과 맞섰다.

이 대표는 윤 후보의 충청 방문과 자신의 동행 사실을 미리 통보 받지 못했고 자신의 반대에도 이수정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한데 대해 ‘패싱’당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더니 당무 ‘보이콧’을 벌이기까지 했다. 선대위 구성에 전권을 달라는 김 전 위원장에게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윤 후보 측 중진이 맞서면서 국민의힘은 한 달 내내 자중지란에 빠졌다.

김 전 위원장이 권성동·장제원·윤한홍 의원 등 윤 후보 측근을 향해 ‘문고리 3인방’, ‘자리 사냥꾼’이라고 공격하고 이 대표가 ‘하이에나’, ‘파리떼’라고 거들자 윤 후보 측이 “상왕 행세하느냐”는 등 저질 언사들을 주고받으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윤 후보는 조정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채 정치 리더십 부재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 갈등의 배경엔 킹이 되려는 사람과 킹 메이커 간 주도권 잡기, 자존심 대결도 내포돼 있다. 김 전 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 문 대통령과 함께 일할 때도 그랬다. 김 전 위원장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선 온전히 자신의 구상대로 따라와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고 이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일이 있다면 여지없이 선을 긋는 성격”이라고 했다.

반대로 윤 후보는 선대위는 어디까지나 후보가 중심이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구상대로 구성돼야 한다는 뜻이 강하다. 윤 후보는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킹 메이커는 국민과 2030 여러분”이라고 했다. ‘김종인 킹 메이커’에 대한 거부감이 담겨 있다.

그러나 당내 분란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고, 윤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비상이 걸렸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러다가 선거를 다 망친다”며 윤 후보와 이 대표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당내에선 윤 후보가 이 대표를 끌어안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수습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김기현 원내대표의 중재로 윤 후보가 지난 3일 울산까지 내려가 이 대표를 만나 갈등을 봉합했다. 김 전 위원장도 총괄선대위원장 직을 전격 수용했다.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이 ‘원톱’임을 분명히 하면서 김병준 위원장과의 서열 관계를 확실히 했다.

한달 싸움을 통해 윤 후보는 적지 않은 리더십 상처를 입었다. 그의 한 측근은 “검찰 리더십과 정치 리더십은 차원이 다르다”며 “윤 후보가 상명하복, 일사분란의 검찰 관습을 떨쳐버리지 못하다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연성과 포용, 강고함 등이 어우러질 필요가 있는 보다 복잡한 정치 리더십의 중요성을 배우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김 전 위원장과 이 대표 ‘콤비’가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결국은 한 발 물러선 윤 후보도 ‘플러스 게임’이 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로써 김 전 위원장은 다시 한 번 킹메이커에 도전하게 됐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뒤끝은?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