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발언 긍정 해석한 한미 당혹…北, 현상유지에 초점 맞춘 듯
북, 경제난·코로나19 대응 위해 대결도 대화도 아닌 현상유지 원하는 듯

한국과 미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화' 언급을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자마자 북한이 "잘못된 기대"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특히 방한중인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전날 북한에 '조건없는 만남'에 응할 것을 촉구한 지 하루만에 사실상 초고속으로 거절 의사를 밝힌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북미가 서로를 향한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일단은 대화재개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만 확인한 셈이어서 한반도 정세의 교착상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美 '만남 호응' 촉구하자 北 '잘못된 기대' 찬물…교착 길어질듯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2일 낮 담화를 통해 미국 측이 최근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해 '흥미있는 신호'라고 한 데 대해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미국은 아마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쪽으로 해몽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아냥댔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김 위원장의 전원회의 발언을 '흥미로운 신호'라고 해석하며 북한에 보다 분명한 대화 의지를 촉구한 데 대한 대답이었다.

김 부부장은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김 부부장은 미국만 겨냥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자제되고 유연한 메시지"(통일부)라며 긍정 평가한 한국 정부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오전만 해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성 김 대표를 접견하면서 "북한도 최근 과거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 대화 재개를 위해 나름 좋은 조건이 조성됐다"고 낙관했는데, 결과적으로 과잉 해석이었던 셈이다.

美 '만남 호응' 촉구하자 北 '잘못된 기대' 찬물…교착 길어질듯
일각에선 정부가 애초 북한의 의도를 너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7일 당 전원회의에서 대미 비난이 없이 '조선(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언급하는 등 과거보다 절제된 측면이 있었지만,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며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확실한 '대화 신호'로 보기엔 애매한 측면이 있었다.

북한이 대화 재개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 적대시정책 철회에 대해 미국이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에 나설 명분도 부족했을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조건 없는 만남이라는 막연한 것 말고 구체적이면서 진정성 있는 명분을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한미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제동을 걸면서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언급한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는 대화도 대결도 아닌 현상유지에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식량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등 내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일단 대외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상황을 가져가자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이 이번에 미국을 비아냥대기는 했지만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요구조건을 나열하지 않았다는 점도 대미 관계를 관리하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현재로선 북한이 경제난 극복과 코로나19 대응 등 내부 문제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고 판단된 뒤에나 미국과의 대결 혹은 대화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우방국인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대미 협상력을 끌어올린 뒤 협상 복귀 시점을 신중하게 타진할 수도 있다.

실제 북중은 전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2주년을 계기 삼아 양국 대사가 상대국 매체인 노동신문과 인민일보에 나란히 기고문을 실으며 친선관계를 부각하는 등 미중 갈등 양상 속에서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