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끼리' 강조하는 북한, 워킹그룹을 '친미사대' 대표 사례로 비난
미국의 대북제재 엄격 이행 입장 확고…바이든, 대북제재 효력 연장
김여정이 '올가미' 비난한 워킹그룹 폐지…남북관계 영향 제한적
한국과 미국이 22일 사실상 폐지하기로 한 워킹그룹은 양국이 남북협력사업 등에 대한 긴밀한 조율을 위해 만들었지만,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북한의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됐다.

한미가 워킹그룹 폐지에 합의한 데는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는다'는 남측 일각의 거부감과 함께 북측의 강한 반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어 보이지만, 대북제재 이행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확고한 상황에서 북미관계나 남북관계에 별 영향은 없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그간 워킹그룹을 남측의 대표적인 '대미굴종' 사례로 지목하며 강도 높게 비난해왔다.

같은 민족인 남북한 간의 문제는 당사자끼리 풀어야 하는데 자꾸 외세를 끌어들인다는 불만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해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감행한 직후 워킹그룹도 남북관계 파탄 배경의 하나로 지목했다.

그는 당시 "북남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실무그룹'이라는 것을 덥석 받아 물고 사사건건 북남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 바쳐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로 되돌아왔다"고 비난했다.

이어 "훌륭했던 북남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의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 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고 워킹그룹에 책임을 지우고 "뿌리 깊은 사대주의 근성에 시달리며 오욕과 자멸로 줄달음치는 이토록 비굴하고 굴종적인 상대와 더이상 북남관계를 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여정이 '올가미' 비난한 워킹그룹 폐지…남북관계 영향 제한적
비슷한 시기 조선중앙통신도 논평을 내 "북과 남 사이 문제를 사사건건 외세에 일러바치며 승인이요, 청탁이요 구걸하면서 돌아친 역스러운(역겨운) 행적을 신물이 나도록 지켜봐 왔다"고 워킹그룹을 비난했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미국이 '시기상조'론을 펴자 남한 당국이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와 관련해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고 비아냥거렸다.

북측의 공개적인 불만 표출은 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위기가 고조됐던 시기에 집중됐지만, 이후에도 선전매체 등을 통해 워킹그룹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이처럼 북한이 워킹그룹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것은 남북이 합의한 사업들이 워킹그룹의 문턱을 넘지 못해 좌초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북한에 지원하려 하자 미국은 이를 운반할 트럭의 제재위반 여부를 따지다 시기를 놓친 게 대표적이다.

정부가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자산 점검 차원 방북이나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 등도 일일이 워킹그룹에서 다뤄진 끝에 원만히 진행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남측에서도 여권 일각과 대북단체, 진보성향 시민단체 등에서 워킹그룹을 '남북교류를 제한하는 기구'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김여정이 '올가미' 비난한 워킹그룹 폐지…남북관계 영향 제한적
이처럼 남북교류의 걸림돌로 인식됐던 워킹그룹의 폐지는 최근 미국과의 대화에 꽤 유연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의 지속적인 요구가 수용됐다는 측면에서 한미 양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기 위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의 남북교류조차 이뤄지지 못한 것은 워킹그룹이라는 채널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제재에 대한 엄격한 잣대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상황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양국은 워킹그룹 대신 북핵 수석대표간 협의와 국장급협의를 강화하기로 했는데,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논의는 비슷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취임 이후 처음으로 대북제재 행정명령의 효력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행정명령 연장은 연례적인 조치지만, 미국이 대북제재의 엄격한 이행에 변함없이 확고하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평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