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 없이 덜컥 철거 발표했다가 근거 빈약하자 조례안에 기대
도의회도 뒤늦은 여론조사…시민단체 "도가 상황 어렵게 꽜다"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두고 충북도가 갈팡질팡하는 행정을 펴 빈축을 사고 있다.

충분한 검토 없이 동상 철거를 발표했다가 찬반여론이 들끓자 그 짐을 슬그머니 도의회에 떠넘기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두환·노태우 동상 철거 갈팡질팡…충북도 '미숙행정' 빈축
29일 충북도의회에 따르면 행정문화위원회는 다음 달 22일 동상 철거 관련 도민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각계 전문가와 도민이 참여하는 공청회 및 토론회도 연다.

임영은 행정문화위원장은 "동상 철거를 두고 찬반 의견이 심하게 엇갈려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뒤 9월 열리는 임시회에서 동상 철거 근거를 담은 조례안을 심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식(청주7) 의원이 대표 발의한 '충북도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동상 건립, 기록화 제작·전시 등의 기념사업을 중단·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행정문화위원회는 지난 17일 열린 제384회 임시회에서 이 조례안을 심사할 예정이었으나 찬반갈등이 커지자 여론을 듣겠다며 상정을 보류했다.

앞서 충북도는 지난 5월 "국민 휴양지에 군사 반란자의 동상을 두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 철거 방침을 내놨다.

도는 충북 5·18민중항쟁기념사업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도정정책자문회의를 통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을 뿐, 별도의 공론화 절차 등은 없었다.

당시 도는 동상 철거 근거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전직 대통령은 경호·경비를 제외한 다른 예우를 받지 못한다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을 들었다.

전두환·노태우 동상 철거 갈팡질팡…충북도 '미숙행정' 빈축
두 전직 대통령은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 법을 적용하려다 보니 동상을 세운 행위 자체가 법을 어긴 꼴이 됐다.

충북도는 2015년 관광 활성화 목적으로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는 9명의 대통령 동상을 청남대에 세웠다.

결국 법을 어기면서 동상을 세운 충북도가 5년 뒤 그 법을 지키겠다며 동상을 뜯어내는 앞뒤 안 맞는 행정을 하게 됐다.

입장이 곤란해진 도는 이 법이 민간사업에 제한돼 있어 행정절차에 의한 동상 설치는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일단 법을 어긴 설치라는 지적에 대한 해명이지만, 그러고 나니 동상을 뜯어낼 근거가 애매해졌다.

보다 못한 도의회가 법적 근거를 만들겠다며 조례 제정에 나섰고, 이번에는 보수단체가 발끈했다.

충북자유민주시민연합은 "대통령 동상은 청남대 관광 활성화를 위해 건립된 것이므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나 기념사업을 운운하는 법률이나 조례와는 무관하다"며 조례안 철회를 요구했다.

부담을 느낀 도의회는 '여론 수렴'을 핑계로 한발 물러섰고, 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먼발치서 애간장을 태우는 상황이다.

전두환·노태우 동상 철거 갈팡질팡…충북도 '미숙행정' 빈축
결국 충북도의 서툰 행정이 여론의 갈등을 조장하고 행정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최진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자치국장은 "도가 동상 철거 결정에 앞서 여론 수렴 절차만 제대로 거쳤어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회 역시 조례를 만들겠다고 나설 게 아니라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치라고 집행부에 제안했어야 했다"며 "현재로선 8월 안에 충분한 논의를 하고, 9월 의회에서 조례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청남대(남쪽의 청와대)는 제5공화국 시절인 1983년 건설됐다.

이후 역대 대통령의 여름 휴가 장소로 이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일반에 개방돼 관리권이 충북도로 넘어왔다.

충북도는 청남대에 역대 대통령의 동상·유품·사진·역사 기록화 등을 전시하고, 전직 대통령이 방문 때 애용한 산책길의 사연을 담아 전두환(1.5㎞)·노태우(2㎞)·김영삼(1㎞)·김대중(2.5㎞)·노무현(1㎞)·이명박(3.1㎞) 대통령 길을 조성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