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비 우선 사용 고수하던 청와대·정부…여당 강력 요청에 추경 검토 시사
총선 앞두고 여야 모두 긍정적이나 추경 실효성 등이 변수
'추경 카드' 검토 나선 당정청…사태 긴박성과 여론 염두에 둔듯
당정청이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긴급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는 안을 검토하기로 뜻을 모은 배경에는 동원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야 할 때라는 인식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우려 속에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집행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등 엄중한 여론 역시 추경을 검토하고 나선 원인 중 하나가 됐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정청은 이날 저녁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비공개 정례 고위급 협의회를 열고 추경 편성 여부를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여당이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결론을 낸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미래통합당 등 다른 야당도 추경을 편성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지금까지 당장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이런 언급은 추경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청와대와 정부는 애초 현 상황을 '비상경제시국'으로 규정하고 경제활력 제고에 필요한 모든 대책을 쓰겠다고 하면서도 그 재원은 추경이 아닌 기정예산(의회에서 이미 확정한 예산)이나 예비비로 조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KBS '뉴스9'에 출연해 추경 편성 계획을 두고 "거듭 말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추경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지난 2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우선은 기정예산과 예비비의 신속한 집행에 집중하겠다"며 "추경은 국회의 의결을 받아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청와대와 정부 역시 추경의 필요성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위기경보 단계를 현재의 '경계' 단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해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한다는 기조를 공식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강력하게 추경의 필요성을 내세운 것도 요인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즉시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보고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총선을 앞두고 현장의 여론에 가장 민감한 정당의 요구라는 점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이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 일각에는 섣불리 추경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회계연도 초반인 만큼 추경을 긴급히 편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냐는 게 그 이유다.

김 실장도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약 512조원 규모의 올해 예산이 슈퍼 예산으로 불렸고, 지금 기정예산의 10%밖에 쓰지 않았다"며 "예비비도 3조4천억원 가운데 1천41억원밖에 안 썼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어느 정도 예산이 소요되겠다는 판단이 서야 추경을 편성할 수 있는데 지금 한창 코로나19 사태가 진행 중이지 않나"라며 다소 신중한 목소리를 냈다.

여야 모두 추경에 긍정적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편성과 집행을 위해서는 그 실익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하는 만큼 추경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달 말까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경제활력 제고 대책이 나오는 만큼 그 대책의 영향을 살펴본 다음 추경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