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아세안+3 정상회의 전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아세안+3 정상회의 전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하루가 시작됐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23일 0시를 기해 종료된다.

외교가에서는 지소미아가 종료될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방위금 협상에서 더 높은 분담금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소미아는 한일간에 맺어진 군사정보 협정이지만 미국에게도 무척 민감한 문제다. 미국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후 "북한으로부터 주한, 주일미군을 보호하는데 지소미아가 필수적"이라며 "지소미아는 미국민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소미아는 북·중·러에 대항하는 '힘의 균형'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지소미아 만기나 한일 갈등으로 득을 보는 것은 중국과 북한"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폐기를 선언한 후 미·일은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주 한미 안보협의회(SCM) 회의를 위해 한국을 찾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 사령관 등은 한 목소리로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했다.

지난 15일엔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직접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일본의 입장변화 없이는 지소미아 연장도 없다는 기존입장을 유지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도 수출규제 문제와 지소미아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반면 미국은 보복성 수출 규제 조치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에겐 별다른 압박을 가하지 않아 우리 정부가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일 군사 공조가 중요하다면 우리나라만 압박할 것이 아니라 원인 제공자인 일본에 대해서도 유감 표명 정도는 해야 형평성이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이 일본 측에도 지소미아 유지를 압박하며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소미아 연장 등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황 대표는 "지소미아는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서 "(지소미아가 종료되면)대한민국 일터와 기업, 해외투자자들을 요동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가에서는 지소미아 종료시 미국 측이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 더 많은 분담금을 요구해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로 자국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국방비가 들어간다는 명분이다.

미국은 한국 측이 분담금 인상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엔 주한미군 감축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한국과 협상이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잘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1개 여단 철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군에서 1개 여단은 3000~4000명 정도다, 미 의회는 2019년도 국방수권법 등을 통해 현재 약 2만 8500명인 주한 미군을 2만 2000명 이하로 줄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정도 감축은 미 의회가 2019년 국방수권법으로 규정한 최소 규모를 건드리지 않는 수준이다.

미국이 주한미군 1개 여단의 철수·감축을 강행할 경우 가장 유력한 대상으로 2사단 예하 제1전투여단(기계화보병 여단)이 거론된다.

이 부대의 감축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9개월마다 돌아오는 교대 시점에 후속 부대를 보내지 않는 방법으로 비교적 손쉽게 감축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1기병사단 3기갑여단이 내년 3월쯤 미 본토로 돌아간 뒤에도 후속 부대가 오지 않으면 주한미군 약 4500여명이 자동 감축된다.

외교가에선 종료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지소미아가 극적으로 연장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 한일 정부가 합의 하에 종료일을 연장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소미아는 연장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끝날 때까지 정보제공을 유예하는 방안도 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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