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관련 국장급 실무협의가 열렸다. 니콜라이 마르첸코 주한 러시아 공군 무관(앞)과 세르게이 발라지기토프 해군 무관이 협의를 마친 뒤 청사 로비에 있는 이순신 장군 흉상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관련 국장급 실무협의가 열렸다. 니콜라이 마르첸코 주한 러시아 공군 무관(앞)과 세르게이 발라지기토프 해군 무관이 협의를 마친 뒤 청사 로비에 있는 이순신 장군 흉상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가 러시아 측의 입장을 왜곡해서 발표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영공 침범을 부인하는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을 외교 전문(電文)으로 일찍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한·러 간 외교 마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내용을 축소해 공개했다는 것이다.

25일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로부터 영공 침범 사건과 관련한 공식 전문을 받은 건 24일 오전이었다. 주한 러시아대사관에 있는 무관부를 통해서였다. 전문은 국방부뿐만 아니라 다른 관계 부처에도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국방부는 전문을 따로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이 전달된 정확한 시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국방부의 설명대로라면 이날 오전 11시20분께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브리핑을 할 당시 청와대가 전문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윤 수석은 그러나 브리핑에서 전문 내용과는 180도 다른 설명을 했다. 전문에는 “러시아는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 공군이 과민대응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윤 수석은 전날 국방부에 초치된 주한 러시아대사관 무관의 말을 전하며 “러시아 정부가 유감을 표하고, 계획되지 않은 침범이라고 해명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문을 오후 6시께 비로소 확인했다”고 해명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사건 당일부터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문과 같은 내용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23일 저녁 러시아 국방부는 언론 보도문을 통해 “임무 수행 과정에서 양국(중국, 러시아) 공군기들은 관련 국제법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러시아 타스통신도 복수의 러시아 정부 관계자가 등장해 같은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대사관도 24일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가 ‘기술적 실수’로 발생한 23일 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깊은 유감을 표했다’는 윤 수석의 발표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청와대 내부에 심각한 소통 문제가 있거나, 청와대가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25일 오전 주한 러시아 무관부를 불러 이번 영공 침범 사건과 관련해 실무협의를 개최했다. 국방부는 이날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 사실을 입증할 증거자료를 제공하고 관련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전했다.

한편 마크 에스퍼 미국 신임 국방장관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 군용기가 침범한 독도 인근 영공을 ‘한국 영공’이라고 명시하며 한·일 방문 시 이 문제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의 이날 발언은 러시아가 침범한 영공을 ‘한국 영공’이라고 적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 국방부는 전날 러시아가 침범한 영공을 ‘한국 영공’이라고 특정하지 않고 그냥 ‘영공’이라고만 밝혔다.

임락근 기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