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1주년에 '국민을 위한 평화' 연설…"등돌린 평화 아닌 협력하는 평화"
'마음의 분단' 치유하며 비핵화 동력 유지…'접경지 피해해결' 언급
"동북아 냉전구도 해체" 한반도 평화로 새로운 국제질서·공동번영 비전 제시
文대통령 '오슬로 구상'…국민 삶 도움되는 '적극적 평화' 역설
문재인 대통령이 6·12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1주년인 12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국민을 위한 평화'라는 제목의 새로운 대북구상을 내놨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국면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는 등 조금씩 변화의 조짐도 감지되는 시점에서, 문 대통령이 북미회담 1주년을 맞아 내놓은 이번 구상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노르웨이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오슬로 대학교 법대 대강당에서 이뤄진 오슬로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이나 선언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깊이 하는 것이며, 대화의 의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연장선에서 북미 간 핵 협상이 교착국면 역시 "70년간 적대해온 마음을 녹여가는 것"이라며 이해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도 국민들이 서로 이해와 신뢰를 쌓아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일상을 바꾸는 적극적 평화'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서로 등 돌리며 살아도 평화로울 수 있지만, 진정한 평화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평화"라고 말했다.

결국 전쟁 등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뿐인 '소극적인 평화' 상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구상인 셈이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이런 일상에서의 '적극적 평화'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커다란 흐름을 견인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인식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평화가 삶을 나아지게 한다는 긍정적 생각이 모일 때, 이념과 사상으로 나뉜 마음의 분단도 치유될 것"이라며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커다란 평화의 물줄기도 더욱 힘차게 흐를 것"이라고 말했다.
文대통령 '오슬로 구상'…국민 삶 도움되는 '적극적 평화' 역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적극적 평화'의 사례로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에 따라 설치된 독일의 '접경위원회'를 제시한 점도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이 "남북한 주민들이 분단으로 인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접경지역 피해부터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 사업이 추진될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동해안에서 중국 어선으로 인해 어민들의 오징어 어획량이 줄어드는 문제,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하는 산불 문제, 한탄강 홍수로 인한 인명 피해 문제 등은 남북이 조금만 협력해도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국민을 위한 평화'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국사회에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평화 담론"이라며 "평화가 좋다는 것을 국민이 체감해야 (평화체제 정착의) 단단한 배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뿐만이 아닌 국민의 주도적 참여로 평화를 이뤄가겠다는 것 역시 이번 구상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인 2017년 4월 23일 한반도 평화구상 발표에서 "국민이 참여하지 않는 정치권만의 통일논의는 색깔론을 넘어설 수 없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통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관계자는 "이때 문 대통령은 남북협력을 중앙정부가 독점하지 않고, 국민이 통일논의에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생각이 오슬로포럼 연설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날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동북아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구도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내놓은 '동아시아철도공동체' 제안을 재차 언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유럽순방 도중,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맞은 시점과 맞물려 '냉전구도 해체'를 언급한 것은, 한반도 평화가 인류의 공동번영으로 이어지는 사안임을 거듭 강조하며 국제 사회의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반도의 평화가 단지 남북의 문제가 아닌 동북아와 유라시아의 공동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 북유럽 순방 도중 핀란드의 '헬싱키 프로세스'를 수차례 언급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냉전 종식 및 동서진영 화합의 계기가 된 헬싱키 프로세스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역시 남북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엿보인다.

아울러 이런 '냉전체제 해체'는 문 대통령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기 위해 제안한 '신(新)한반도 체제' 달성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앞서 3·1절 100주년 기념식을 앞둔 2월 2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진영과 이념에서 경제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신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체제의 해체에 성공한다면 세계사에 뚜렷하게 기록될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