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1년반 근무…"평양서도 올해 '달라진 분위기' 느낄 수 있어"

바트 베르메이렌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북한사무소 대표는 북한 전역에서 6·25전쟁 불발탄 폭발사고 등 무기오염(weapon contamination)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며 인도적 지원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베르메이렌 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회의실에서 가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무기오염의 범위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국적(nationwide)인 문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무기오염이란 무력충돌이 끝나고도 처리되지 못한 지뢰 등의 폭발물이 계속해서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특정 지역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등의 현상을 말한다.

북한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남은 불발탄으로 1950년대 이후 최근까지 1만6천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5천여건의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 베르메이렌 대표의 설명이다.

ICRC는 북한 당국의 집계 수치를 바탕으로 불발탄 폭발사고 등으로 매년 15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베르메이렌 대표는 "폭발물 제거는 최신 기술이 아닌데도 북한에서는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거의 매주 (불발탄 폭발사고로) 다치거나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2002년 평양에 북한사무소를 연 ICRC는 현재 북한에서 인민보안성을 대상으로 폭발물 제거 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락랑·송림 등 2개 지역에서는 신체 재활센터를 운영, 불발탄 사고 등으로 부상을 입은 주민들에게 의·수족을 맞춤 지원하는 등의 사업을 벌였다.

연간 2천명 정도가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

내년에는 사고 예방을 위한 홍보 포스터 제작을 지원, 북한 학교 4천500여 곳에 배부할 계획이라고 베르메이렌 대표는 밝혔다.
ICRC 북한사무소장 "北 불발탄 사고 빈번…지원확대 절실"
베르메이렌 대표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 "인도적 지원 분야는 비정치화(depoliticized)돼야 한다"며 "정치적 협상과 연결되면 인도적 지원이 '협상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제재 여파로 인도적 지원 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북한 사회의 경우 의료, 식량, 식수 등 전반적 분야에서 인도적 지원에 대한 '니즈'가 매우 크기 때문에 내년도 북한사무소 예산으로 올해 대비 62% 증가한 660만 스위스프랑(약 74억원 상당)을 배정해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평양에서 머문 그는 올해 들어 '확 바뀐' 평양의 분위기도 귀띔했다.

그는 "작년에 긴장 고조로 인도주의 기관으로서 혹시 모를 유사사태, 즉 비상대책(contingency plan)을 준비해야 하다 보니 업무도 많았고 스트레스가 많았다"며 "올해 그런 상황이 크게 완화됐고, 전반적으로 훨씬 더 편안한(relaxed) 분위기를 평양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ICRC는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에서 이산가족 상봉 및 유해발굴 등의 활동도 펼치고 있다.
ICRC 북한사무소장 "北 불발탄 사고 빈번…지원확대 절실"
ICRC 한국사무소와 업무 공유 및 논의차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했던 그는 이달 말을 끝으로 평양에서의 근무를 마무리한다.

그의 후임으로는 ICRC 요르단사무소의 티에리 리보 부대표가 내정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