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료·거마비 형태 비공식자금 수수 관행
"비현실적 정치자금법 개정해야" 목소리도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23일 드루킹 특검의 소환 수사를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정치자금을 불법적 형태로 수수한 것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노 의원은 유서에서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라고 밝힌 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적었다.

제20대 국회에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이미 의원직을 상실했거나 수사·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만 10건에 달한다.

국회의원을 일컬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막강한 입법권을 등에 업고 개인적 치부를 위해 각종 이권에 얽히고설킨 경우라면 처벌이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옥죄어놓은 비현실적 정치자금법을 이참에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의원들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후원회 행사를 통한 정치자금 모금 등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전국 선거가 있는 해에 3억 원, 선거 없는 해에는 1억5천만 원이 한도인 공식 후원금과 월 1천149만 원(20대 국회 기준)의 국회의원 세비가 공식적으로 받아서 사용할 수 있는 사실상 정치자금의 전부다.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통합 선거구를 지역구로 둔 의원의 경우 3∼4개 지역에 사무실과 직원까지 두면 후원금과 세비로는 기본 운영비조차 감당하기가 벅차다는 게 여야 의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그나마 야당 소속이거나 현역 의원이 아닌 경우 후원금 모금이 쉽지 않아 한도를 채우지 못하거나 아예 후원금을 모금할 수 없어 자금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노 의원 역시 강연료 등의 명목으로 드루킹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시점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인 2016년 3월이었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당시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예비후보 신분이라면 후원회를 통해 1억5천만원까지 모금할 수 있었지만 노 의원이 유서에 밝힌대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합법적인 회계처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보좌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치를 하려면 활동비, 상근자 급여, 사무실 유지 비용 등이 필요한데 이 금액은 매달 최소 500만 원에서 2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회찬 투신사망 계기로 본 정치자금 '현실'
결국, 공식 후원금으로 정치자금을 충당하기 어려운 경우 '강연료'나 '거마비' 형태로 비공식 정치자금이 오가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진다.

여기에 선거철이면 등장하는 국회의원 등의 출판기념회도 대표적인 정치자금의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정치자금의 유입과 사용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고, 대신 운영의 투명성을 감시하는 미국의 사례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후원금 모금 한도를 높이되 회계처리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통화에서 "정치자금은 '민주주의의 모유'로서 돈이 없으면 정치를 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 "정치자금과 후원금 모금을 막으려 하기보다 투명성을 높여서 음성적, 불법 정치자금이 나오지 않도록 하면 된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또 "현행법은 현역 의원이 아닐 때 합법적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받아들일 방법이 없다"면서 "현역과 비현역, 정치신인 간에 차별 없이 후원금을 모을 수 있게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