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중감위 스위스 대표 맡았던 요스 예비역 소장 "DMZ는 내게 특별했던 곳"
"한반도에 평화·안정 염원…한국, 미국 모두 평화협정에 서명해야 한다고 생각"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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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동물과 식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곳. 지뢰가 사방에 묻혀 있고 언제 총성이 울릴지 모르는 비무장지대(DMZ)는 노장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장 자크 요스 스위스군 예비역 소장(65)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2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DMZ에서 보낸 6년을 돌아보며 매우 특별한 곳이었고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중립국감독위원회(NNSC) 스위스 대표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했다.

퇴역 후 베른에 사는 그는 한-스위스 협회 대표로 활동하며 양국 민간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유엔중립국감독위원회는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설립됐다.

처음에는 스웨덴, 스위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가 위원회에 참가했지만, 지금은 스위스, 스웨덴만 실질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위스는 1953년 48명을 처음으로 파견했다.

지금은 장성 지휘관을 포함해 5명만 활동한다.

위원회를 거친 스위스군은 750여 명에 이른다.

요스 전 소장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린 DMZ 근무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대표단을 이끌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아내와 진지하게 논의했다. 나에게 판문점과 DMZ는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지뢰가 묻혀 있다 해도 동식물에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DMZ에 근무하면서 2011년 늦둥이 딸을 낳았다.

한국에서 얻은 딸이라 노엘 아이엘렌 유진으로 한국식 이름을 뒤에 붙여주었다.

위원회의 임무는 사상·생존 병사의 본국 송환, 탈북자 조사, 군사 동향 감시 등으로 규정돼 있지만, 그는 외교관 역할도 해야 했다.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 등 판문점을 찾는 사람들을 응대하고 DMZ에 대해 브리핑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요스 전 소장은 "하루하루 외교관이면서 장군으로 역할을 해야 했다. 전 세계에서 판문점을 찾는 사람들을 만났던 건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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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경색되던 시기였던 만큼 군사적 긴장감을 느낀 적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천안함 피격 공동 조사나 연평도 포격 등 큰 사건들 외에도 남북한 경계에서 많은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을 때 유엔중립국감독위원회의 해체 여부에 대해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스위스, 스웨덴 위원회의 임무는 달성되는 셈이고 남아있는 양국 위원들은 철수하게 될 것"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평화협정 서명 주체 문제에 대해 그는 자신이 언급할 문제는 아니라면서도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1953년 정전협정에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장군,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평더화이(彭德懷)가 서명했다.

남한은 서명하지 않았다.

요스 전 소장은 "정치, 외교적인 문제이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미국과 한국 모두 평화협정에 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이 평창에 선수들과 응원단을 보냈다. 우리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불신과 적대감을 없애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정상회담 이후에도 최선의 성과를 바라자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