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선대의 유훈" 비핵화 의지 재확인…긍정적 신호
靑관계자 "北, 반대급부 있어야 비핵화…우리 해법과 다르지 않다"
美 '리비아식 일괄타결' 고수하면 남북 대화와 엇박자 날 수도
남북미 정상 '비핵화는 맞는데'… '단계 vs 일괄' 로드맵 달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5∼28일 방중 기간에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관심은 구체적인 비핵화의 방법론에 쏠린다.

남북미 간 대화의 궁극적 목표였던 비핵화에 노력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를 다시 확인한 만큼 이제는 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로 논의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는 점은 이달 초 방북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을 만났을 때도 김 위원장이 강조한 내용이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의 비핵화 의지를 어느 정도 못 박을 수 있게 된 점은 고무적이라는 게 청와대의 기류다.

이제 관건은 4월 말부터 연쇄적으로 마련될 남북, 한미,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를 놓고 어떻게 이를 달성해야 하느냐다.

김 위원장은 중국에서 "한미가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며 비핵화 구상을 제시했다.

이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단계적이고 동시적 조치'는 과거 북핵 6자회담 과정에서 견지된 원칙인 '행동 대 행동'에 입각한 단계적 방식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강조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도 "5자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단계적 방식으로 상기 합의의 이행을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할 것을 합의했다"는 문구가 있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는 체제안전 보장 같은 자신들의 요구는 빠진 채 이뤄지는 비핵화 논의에 우회적으로 반대의 뜻과 함께 대북 군사적 위협의 순차적 제거와 경제지원 등을 확인하면서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이러한 김 위원장의 입장이 문 대통령이 밝혀 온 비핵화 해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의 면담에서 '핵 동결→폐기'라는 2단계 북핵 해법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2단계 북핵 폐기론은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 논의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나오면 미국 등 국제사회가 단계별 상응 조치를 협의해 나간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문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차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핵 동결에서 핵 폐기에 이를 때까지 여러 단계에서 서로가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에 이르기까지 남북과 미국 등 한반도 문제 당사국들이 서로 취해야 할 단계별 행동을 주고받기식으로 이행해가자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구상이 이번 방중 때 나온 김 위원장의 구상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는 만큼 청와대는 남북 간에는 정상회담 등 '비핵화 대화'에서 얼마든 이견을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문제는 남북 간에 어느 정도 형성된 공감대와 미국 사이의 의견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해법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 해법은 강경한 기조의 '리비아식 해법'과 가까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리비아식 해법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으로 앉힌 것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리비아식 해법은 영국 중재로 핵 포기를 선언한 리비아가 선언 직후 핵시설 공개와 포기 절차에 들어간 데 이어 미국은 리비아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관계 정상화와 경제지원으로 화답한 것을 말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한 다음에야 후속 조치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 대체적 해석인데,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다 하더라도 체제 보장 없이 핵 포기를 선언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리비아식 해법을 고수한다면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의 중재자 역할에 더욱 애를 먹을 가능성이 크다.

9·19 합의가 이행 도중에 중단된 데 이어 그간 핵실험을 통해 실전 배치가 가능할 정도로 핵 능력이 진전된 북한에 대한 여전한 불신을 미국이 거두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이 열려도 북미 사이를 좁힐 동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강조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한 단계적 해법의 원칙을 지켜가면서 진정성 있는 자세로 북미를 설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어찌 됐든 반대급부가 있어야 비핵화에 응하지 않겠나"라며 "비핵화라는 방향에는 이견이 없는 만큼 한미 정상 역시 문제 해결의 접점을 찾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