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 대선판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오는 5월9일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기로 합의하면서다. 대선 전 개헌을 반대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개헌이 국가 미래를 염두에 두기 보다 당장의 눈앞 대선 유·불리를 계산한 정략에 치우치고 있다는 점이다. 개헌이 대선 판짜기 및 연대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개헌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대선 가도에서 유리한지, 불리한지만 염두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력 구조 개편 논의에 매몰된 자체도 문제라는 비판이 많다.

개헌을 추진하는 3당 내부에서 조차 대선 전 개헌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내부 조율 없이 원내대표들만 모여 합의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대선전 개헌은 국회 표결 과정에서 필요한 국회의원 3분의 2(200명) 찬성 정족수를 채우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어졌다.

대선이 불과 50여일 남은 상황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의도에 대해 비판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다자구도 대결로 가면 문 전 대표에게 패할 가능성이 큰 만큼 실현 가능성을 떠나 ‘대선전 개헌 대 비(非)개헌’ 구도를 만들어 민주당 쪽으로 기운 대선 판도를 흔들어 보려는 시도가 아니냐는게 비판의 요지다.

개헌을 고리로 대선을 친문(친문재인)대 반(반문재인) 구도로 몰고 가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은 민주당 내 비문(비문재인) 개헌 찬성파들과 연대해 반문 전선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개헌 연대 추진 행보와 맞물려 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문 후보는 개헌논의에 대해 의회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며 “19대 국회 때 문 후보도 개헌을 주장했다가 지금은 다른 발언을 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이어 “개헌을 대선과 연계한다면 소위 친문 세력과 반문 세력의 대결로 선거구도가 갈 수도 있다”며 “그럴 때 반문세력 쪽에서 개헌에 찬성을 많이 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갑자기 개헌을 추진하면서 바른정당, 국민의당과 손을 잡은 것은 보수진영 유력 대선 주자들이 잇달아 불출마 선언을 한 것과 무관치 않다. 당내에서 지지율 10% 이상 보이는 주자가 없어 추후 다른당과 연대에 나서는게 대선 본선 과정과 차기 정권 정치판에서 유리한 자락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개헌은 의지와 결단의 문제”라며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킬 때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동참이 필요했듯 개헌 역시 아무리 미워도 한국당의 동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당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개헌을 제안했고 민주당도 동의했었다”며 “그런데 민주당은 문 후보가 반대한다고 해서 비겁한 침묵과 반대로 미뤄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문재인을 보면 이회창이 생각난다.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002년 대선에서)대세론에 안주하다 노무현에 패배했다”며 “민주당 지도부와 문재인 전 대표는 박근혜식 패권정치의 종착역이 탄핵이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도 “이번 탄핵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총체적 탄핵이었다”며 “이제 개헌을 통해 무너진 시스템을 즉각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문 전 대표는 개헌노력과 합의에 대해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대단히 유감스럽고 실망스러운 발언”이라며 “역사에 개혁의 반대자로 낙인 찍히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내 양심적인 개헌 세력에게 호소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더는 친문패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직 나라와 국민이 잘 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보시고 결심해 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당장 내부 반발에 부닥쳤다. 국민의당은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대표가 개헌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안 전 대표의 대선 전 개헌 반대는 제3지대 연대에 부정적인 태도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국민의당 대표로서 대선에 완주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개헌을 매개로 한 연대에 미온적인 반응으로 보여왔다.

문 전 대표가 대선 전 개헌을 반대하는 큰 이유는 현재 가장 유리한 대선 고지를 점하고 있는 만큼 개헌을 통해 판을 흔들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집권 가능성이 높은데 3당이 추진하는 4년 중임제 분권형이든,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원집정부제든 대통령 권한을 약화하는 것에 동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민주당 주류 진영은 3당의 개헌 합의가 대선판을 흔들기 위한 ‘정략적 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정치권 일각의 개헌 논의는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다수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하자고 정했는데, 이를 못 믿고 3당이 개헌합의를 한 것은 민주당 전체를 모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비문 진영에서는 당 지도부와 문 전 대표 등 대선주자들이 개헌론을 부당하게 억누르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비주류는 구심점이 없어 힘을 한 곳에 모으기 쉽지 않다.

개헌 논의가 집권 유불리를 염두에 둔 권력구조 개편 위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경제민주화 조항, 통일시대 대비, 기본권 확대 등이 절실한데 이 부분에 대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권력구조가 아닌 권력 오남용이 문제인 만큼 국회를 포함한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권리신장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 역시 정치권에서는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헌법학자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본적으로 개헌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하의 통일까지 내다보고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