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시장 제외하면 조선시대 이래 최장수 기록
지지율 답보에 대선 출마설과 3선 도전설 엇갈려


박원순 시장이 22일이면 인구 1천만 서울시의 민선 최장수 시장 기록을 세운다.

박 시장이 2011년 10월27일 재보선에서 당선, 취임한 이래 1천884일을 채우며 전임 오세훈 시장이 세운 기록을 갈아치운다.

◇ 조선시대 이래 사실상 최장수 서울시장
2014년 재선에 성공하며 약 5년 2개월 재임한 박 시장은 특이 사례인 고건 전 시장을 제외하면 조선시대 이래 최장수 서울시장이기도 하다.

'행정 달인'으로 불린 고 전 시장은 총 재임 기간이 2천213일로 가장 길지만 연속적이지 않다.

1988∼1990년(제22대) 관선 시장을 지낸 뒤 민선 2기(1998∼2002년)에 다시 1천461일 재임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 서울시장 격인 한성판윤 평균 재임 기간이 4개월에 불과했다.

1395년부터 1910년까지 515년간 임명된 한성판윤은 1대 성석린을 포함해 1천133명이고, 1천930대까지 내려갔다.

한성부를 다스린 정2품 관직인 서울시장 명칭은 판한성부사 → 한성부윤 → 한성부 판윤 → 대 한성부 판윤으로 변화했다.

관선 최장수 시장은 구자춘 제16대 시장(1천572일)이다.

최단명 시장은 자택 그린벨트 훼손 시비로 부임 7일 만에 퇴임사를 읽은 제26대 김상철 시장이다.

사고와 비리 등으로 물러난 서울시장도 많았다.

불도저식 개발 사업을 벌여 '두더지 시장' 별명을 얻은 제14대 김현옥 시장은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사퇴했다.

15대 양택식 시장은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후 경질됐고 20대 염보현 시장은 퇴임 후 금품수수 사건이 불거져 구속됐다.

초대 서울시장은 1946년 경성부에서 서울시로 명칭이 바뀌며 취임한 김형민 시장이다.

첫 민선 시장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선거에서 뽑힌 11대 김상돈 시장이다.

국민복 차림과 카이제르 수염으로 유명했던 김 시장은 이듬해 5·16쿠데타로 밀려났다.

이어 취임한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출신으로 군복을 입고 근무했다.

구자춘 시장은 서울시경국장 출신으로 직원 단발령을 내리기도 했다.

◇ 박원순 서울시정 5년…임기 채우나
박 시장이 취임 후 처음 결재한 것은 초등학교 무상급식 추가 지원이었다.

당시 사회 요구에 맞춰 복지 예산은 대거 확대하고 채무 감축에 힘썼다.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지하철 9호선 재구조화 등도 박 시장이 내세우는 업적이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에서는 중앙정부와 달리 적극 대응했다고 자평하고 있고, 생활임금제 도입,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화 등 노동과 인권 문제에 적극 나섰다.

1천원이라도 금품을 수수하면 중징계하는 '박원순법'으로 공직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현재 역점 사업은 서울역고가를 폐쇄하고 보행길로 만드는 '서울역 7017'이다.

박 시장은 SNS로 시민 의견을 듣는 소통 방식을 적극 활용해 눈길을 끌었다.

정책 정보를 많이 공개하고 시민의 시정 참여를 제도화하는 등 열린 행정에도 앞장섰다.

박 시장은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국정원 사찰 의혹 등으로 불편한 관계였으며 박근혜 정부와도 대립했다.

복지부와 소송 중인 청년수당을 포함해 중앙정부의 강한 견제로 서울시 정책이 손발이 묶이는 경우도 많았다.

또 5월에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대권 '잠룡' 박 시장은 앞으로 최장수 기록을 얼마나 연장할지 관심을 받고 있다.

박 시장은 "5년여 시정을 통해 시민과 함께 서울시 혁신을 이끌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며 "중앙정부와 갈등을 겪으며 국가 운영에 관한 철학을 얻은 것은 큰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대선행보를 계속중인 박 시장이 내년 봄께 시장직을 던지고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는데 탄핵정국이 개막됨에 따라 그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탄핵 정국에서 지지율이 답보하자 2018년 6월 말인 임기를 채우고 3선 도전까지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최종 향방이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merci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