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9일 가결 직후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환호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바라보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9일 가결 직후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환호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바라보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했지만 시장에선 의구심이 가득하다. 일각에선 불확실성이 걷히기는커녕 오히려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달 넘게 경제사령탑이 부재한 가운데 탄핵 정국이 아무런 ‘로드맵’ 준비 없이 시작되면서 경제주체들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전문가들은 정치리스크가 경제를 짓누르는 현상이 길어져 국가 전체의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제부터라도 제 궤도로 돌려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 불확실성 걷히나

[탄핵안 가결] "정치는 탄핵 당했어도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게 하라"
정부는 이날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 경제 파급을 최소화하기 위해 총력을 쏟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이런 정부 입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정치 불확실성 속에서 상당 기간 더 표류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탄핵안 가결에도 박 대통령의 즉시 하야를 주장하는 정치권과 시민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강해 정국 혼란은 상당 기간 지속되거나 오히려 더 증폭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지만 국정 리더십이 정상 상태로 복원될지도 의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를 앞두고 국론 분열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 경제엔 모두 악재 요인들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세를 보이면서 분기 성장률은 0%대로 떨어졌고, 연구 기관들은 내년 성장률 전망을 2%대 초·중반으로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국내 소비심리와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내외 악재 한꺼번에 닥치나

전문가들은 탄핵 가결 이후에도 정치 불안정이 지속되면 경기는 더 빠르게 곤두박질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탄핵안 가결 후에도 대통령 즉시 하야를 주장하는 촛불집회가 지속되면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면서 경제 주체들은 더욱더 움츠러들 것”이라며 “정치가 탄핵됐더라도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이날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수개월 동안 국정은 사실상 마비상태였다”며 “민생을 살리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특히 “지금 우리 경제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 있다”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꺼리고 각종 구조조정과 일자리 부족으로 국민들은 내일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며 경제활성화를 강조했다.

◆경제 복원력 살려야

탄핵 이후 경제를 제 궤도로 돌리지 않으면 중장기 경쟁력까지 훼손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공공·금융·노동·교육 등 정부의 4대 구조개혁은 이미 물 건너갔다.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물론이고 규제프리존특별법 같은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도 정치권의 반대와 무관심 속에 무산될 위기다.

기업 경쟁력을 복원하는 작업도 기약 없이 늦춰져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리더십 부재가 해소되지 않으면 정치적 부담이 큰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더욱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나 사업재편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오정근 교수는 “기업들이 많게는 수천억,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하기에 앞서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확인하고 싶을 것”이라며 “차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기업 투자는 급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을 확실히 제거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란 얘기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