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자신의 거취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밝힘에 따라 정상외교 차질 등 외교안보 분야의 공백 상태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길게는 차기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모든 정상외교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음달 일본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 한·중·일 정상회의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외교가 반응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6차 회의가 열린 뒤 올해 일본은 내달 19~20일 정상회의 개최를 추진했지만 중국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데다 박 대통령마저 참석하기 어렵게 됐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아직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진전이 없는 상태”라면서도 “상황을 좀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미국 차기 정부와의 정상회담도 무산되는 분위기다. 세계 각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하는 내년 1월20일 이후 미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 외교부는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트럼프 당선자가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한국 독자 핵무장 허용,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대화 등을 언급하는 등 한·미 동맹이 격랑에 휩싸였지만 정상회담이 불투명해지면서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국제사회 압박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0일(현지시간) 북한의 석탄 수출을 제한하는 새로운 대북 제재안을 의결할 예정이어서 한시름 덜기는 했다. 그러나 유엔 결의안 이후 발표하려던 우리 정부의 독자 대북 제재안은 동력을 얻기 어려울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3월2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가 채택된 지 엿새 후인 3월8일 북한 단체 30개, 개인 40명에게 금융 제재를 가하고, 180일 이내 북한을 기항한 제3국 선박의 국내 입항을 금지하는 등의 독자 제재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도 유엔 제재에서 미진한 부분에 대해 추가 제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통일부 관계자는 “독자 제재안이 발표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국정 공백 논란 속에 체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 등 국방 현안도 관심거리다. 협정은 이미 발효됐고 사드도 일정대로 추진되고 있어 되돌릴 가능성은 낮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이를 지속적으로 반대해 온 만큼 정국의 전개 상황에 따라서는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대선 이후 잠잠하던 북한이 조만간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추가로 도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군은 철통 같은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군 통수권자의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면 안보 분야도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정태웅/박상익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