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시 이를 심판할 헌법재판소 압박에 나섰다. 헌재를 향해 “탄핵 기각 땐 민심의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등 잇달아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일각에선 헌법과 법률을 토대로 양심에 따라 심판해야 하는 재판관들을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5일 열린 인천경영포럼 오찬 강연회에서 “헌재가 박 대통령 탄핵심판을 기각한다면 이는 민심과 어긋나는 일”이라며 “헌재가 감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탄핵심판을 기각한다면 국민은 헌법제도 자체를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1일엔 “탄핵 의결이 수월하도록 탄핵안 발의에 새누리당 의원도 대거 참여시킬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헌재도 쉽게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6일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헌재에서 탄핵 기각 결정이 나거나 헌재 판결이 중단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헌재도 헌법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최근 TV토론회에서 헌재를 겨냥한 ‘민심 폭탄’ 발언을 했다. 야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 탄핵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해 헌재가 기각 결정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야당이 이렇게 압박에 나선 것은 지금의 헌재 재판관 구성상 탄핵 결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헌법 113조 1항엔 “헌재에서 법률의 위헌 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 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재판관 9명의 정치 성향은 ‘보수와 친여’가 많다. 박한철 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박 대통령이 각각 지명해 임명했다. 이정미·김창종·이진성 재판관은 대법원장 지명으로, 안창호(옛 한나라당)·김이수(옛 민주통합당)·강일원(여야 합의) 재판관은 국회 몫으로 지명돼 각각 선출됐다. 보수·친여 성향 재판관이 6~7명인 것으로 야당은 보고 있다. 2014년 통합진보당 위헌 심판 땐 ‘8 대 1’로 해산 결정을 내렸다.

박 소장은 내년 1월31일, 이정미 재판관은 내년 3월13일 임기가 끝난다. 결정 선고 전에 임기가 끝나는 재판관은 심판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 또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해야 한다. 이 때문에 탄핵 결정 선고가 3월13일 이후로 미뤄질 경우 재판관 한 사람만 탄핵심판을 거부하면 심리가 중단된다.

심리가 제대로 이뤄지더라도 7명 가운데 2명이 탄핵에 반대하면 탄핵안은 기각되고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된다. 야당이 탄핵 절차를 서두르는 것은 이런 정황 때문이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