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관운(官運)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 칭할 수 있겠습니까.”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파문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 총리와 부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교체 인사를 단행한 것을 놓고 한 경제부처 간부가 내놓은 촌평이다. 이번 인사를 통해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신임 총리에,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은 새 대통령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취임 10개월 남짓 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러나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새 경제부총리로 내정됐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사가 ‘최순실 사태’라는 돌발변수를 만나 연쇄적으로 이뤄졌다.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산다는 건] "실력만으론 안되는 게 승진 … 오죽 답답하면 점집 찾겠나"
운에 달린 승진

관운이란 게 진짜로 존재할까. 공무원 대다수는 확실히 그렇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주 총리 등의 인사처럼 실력이나 노력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요인에 의해 인사가 이뤄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당일 아침까지 한 부처 장관으로 내정됐다고 통보받은 사람이 발표 직전에 바뀌는 경우도 있다. 오죽했으면 “장관 중에 행정고시 수석 한 사람 드물다”는 말이 관가에 농담처럼 돌아다닐까.

실제 공무원 인사엔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가장 큰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5년마다 반복되는 정권 교체. 공무원들이 ‘가장 관운 좋은 공무원’ 중 하나로 꼽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의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정거래위원장, 기획예산처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감사원장 등 장관급만 다섯 번을 한 그는 말 그대로 ‘직업이 장관’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때까지 누구보다 승진 때문에 마음고생 한 거로도 유명하다. 호남 출신이란 이유로 남들은 5년 만에 하는 서기관 승진을 8년 만에 했고, 국장 승진도 두 번 미끄러졌다. 1급 승진도 가까스로 한 데 이어 김영삼 정부 때는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내정됐다가 하루 만에 무산되면서 관직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내리 다섯 번 장관을 했다.

‘돌발 상황’에 웃고 울고

지금은 대학교수로 있는 A씨는 정권 교체 때문에 반대로 불이익을 당한 경우다.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1급과 차관급 청장까지 지낸 A씨는 장관은 해보지 못하고 공무원을 그만뒀다. 2007년 하반기 청와대의 수석으로 들어간 것이 패착이라면 패착이었다. 그해 말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 이듬해 2월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A교수는 “나의 청와대 전임자는 수석으로 7~8개월 근무하고 관으로 복귀해 장관을 했지만 나는 정권이 바뀌어 장관으로 갈 자리가 없었다”며 “몇 개월 차이로 승진이 엇갈리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여기에 수많은 우연적 상황마저 겹쳐지면서 공무원 인사는 더욱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튄다. 한 경제부처에서 2000년대 후반 차관을 지낸 K씨의 사례는 지금도 후배 사이에서 회자된다. K씨는 차관을 달기 전 1급 시절에 용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후배가 먼저 차관에 승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배가 차관 승진 뒤 1주일 만에 과로사를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바람에 차관이 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점집으로 향하는 관료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공무원 사회에선 ‘관운은 천운(天運)’이라는 말도 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본인의 승진을 확신하지 못하는 공무원이 늘어가는 것도 당연지사다.

이런 상황을 대처하는 공무원들의 ‘생존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적지 않은 공무원은 ‘스스로 관운을 만드는 작업’에 나선다. 정권 초기라면 실세에, 정권 교체기라면 집권이 유력한 차기 정부의 유력자들에게 이른바 ‘줄대기’에 나서는 것이다.

다른 한편의 공무원들은 운에 스스로를 맡기고 살아간다. 담담하게 주어진 소임을 열심히 하면 관운도 따라올 것이라는 ‘자기 세뇌형’이다.

그렇다고 마음의 불안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공공기관장 B씨가 과거 정부부처에서 1급 승진을 한 뒤 점집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다. B씨는 “1급이 되니까 내가 차관 승진을 할 수 있을지 정말 확신을 못 하겠더라”며 “하도 답답한 맘에 나도 모르게 점집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보니 나 말고도 1급 공무원의 절반 이상은 점집에 다니는 것 같더라”고 귀띔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