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두차례 독대하며 위기극복 방안 '진언'…서청원 최경환도 역할
靑 실무라인은 붕괴…야당선 김기춘·우병우 배후설도 제기
"手는 좋은데 手順 꼬였다"…"손발없는 상황서 발생한 실수, 靑 과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 터진 후 청와대의 인사·정무라인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청와대의 2인자인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교체된데 이어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우병우 민정수석이나 당청 간 가교 역할을 맡았던 김재원 정무수석 모두 경질됐기 때문이다.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이 2일 국회 운영위에서 개각을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했을 정도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친박근혜)계가 장악한 당 최고위 역시 비박계의 거센 퇴진압박에 내몰려 입지가 좁아진 상태다.

이런 와중에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 등 후속 인사가 전격적으로 이뤄지자 당청에서 조력자가 누구냐는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최순실이든 누구든 잘못을 저질렀다면 조사해서 처벌하면 된다"면서 "그러나 국정은 중단 없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여러 경로로 큰 폭의 인적쇄신과 국정운영 방향의 수정을 건의했고 이 게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밝혀 박 대통령의 판단에 조력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지난달 27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건강악화를 이유로 귀국을 미룰 것처럼 말했던 최순실 씨가 사흘 만에 한국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지난 28일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90분간 독대한 이 대표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최 씨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인적 개편 없이는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고 직설적인 제안을 내놨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대표는 28일뿐 아니라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던 25일 밤에도 청와대에 들어가 박 대통령과 만났으며, 또 수시로 박 대통령과 전화로 정치권과 일반 여론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가 당내 대선주자나 비박계의 퇴진 요구에도 버티는 것은 자신마저 물러설 경우 박 대통령에게 조언할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이 대표 체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친박계 맏형 격인 서청원 의원이나 정권 실세로 통하는 최경환 의원이 주변에서 원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박계 의원은 "만약 현 지도부 체제마저 와해되면 새누리당은 물론 보수 진영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면서 "몇몇 친박계 의원들이 모임을 갖고 수습책을 논의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여권내 비박계에서는 최 의원이 인선 과정에서도 조언을 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와 함께 정진석 원내대표 역시 이 대표와 같은 시기에 박 대통령과 독대하며 후임 총리군을 추천했고, 그중에 한 명인 김 전 정책실장이 실제 지명됐다.

정 원내대표가 거국내각 구성을 거부한 야당을 거세게 비판한 것도 청와대와 모종의 교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온다.

다만 당직을 맡지 않은 친박계 그룹은 이번 사태에서 사실상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와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친박계 세력을 물밑에서 결집했던 한 의원은 "예전에는 가끔 청와대로 들어가 의견을 나누기도 했지만 요즘은 전혀 그런 게 없다"면서 "이번 개각도 언론에 나고 나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 전 민정수석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31일 당 회의에서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이 만든 김기춘-우병우 라인이 국가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치밀한 대응을 시작했다"고 최 씨의 수사와 거국내각 제안 같은 쇄신책의 배후로 지목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관여하는 것이 없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여권내에서는 누가 조언을 하는가를 떠나서 야권 출신인 김병준 교수를 '책임총리'로 발탁하는 카드는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인데 야당과 상의하는 정치적 절차를 밟지 않아 정국을 오히려 꼬이게 했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국회와의 가교역, 야당과의 소통이 중요한데 그런 절차들이 모두 생략돼 버렸다는 것이다.

한 당 관계자는 "바둑으로 치자면 수(手)는 정말 좋은데, 수순(手順)을 엉망진창으로 하는 바람에 판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라고 비유했다.

이정현 대표도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전날 김병준 총리 내정자의 '일방통행식' 발표에 따라 야권이 강력 반발하며 정국이 더 꼬이는 데 대해 "대통령께서도 청와대에 손발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실수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의 과오"라는 언급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aayy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