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대한민국 갑질 리포트] 국회의원 등에 업은 보좌갑
19대 국회 때 한 의원실 A비서관은 피감기관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자신의 민원이 있거나 특정 기업에 대한 불만이 생기면 해당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닦달했기 때문이다.

A비서관은 자신의 휴대폰이 고장나자 애프터서비스(AS)센터를 가는 대신 피감기관인 통신사 관계자를 국회로 불렀다. 그는 휴대폰 품질 등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처음엔 당황했던 기업 관계자는 이내 숨은 뜻을 알아차렸다. “신형 휴대폰으로 교체해 드리겠다”고 하자 상황은 끝났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휴대폰을 바꿔 주는 게 훨씬 낫다는 그동안 경험의 산물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A비서관은 국내 식품 대기업에서 만든 가공식품을 먹은 뒤 탈이 나자 역시 기업 관계자를 불렀다. 기업 관계자도 어쩔 수 없었다.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이 사과한 뒤 상당량의 식품 이용권을 줘야 했다. A비서관은 이 기업 직원들에게만 제공되는 공연 티켓을 달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기업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티켓을 줄 수밖에 없었다. A비서관은 당시 해당 의원실에서 해고당했으나 지금은 또 다른 의원실에서 버젓이 근무 중이다.

일부 국회의원 보좌관과 비서관의 갑질에 피감기관은 속수무책이다. 의원이 떡하니 뒤에 버티고 있어서다. 밉보이면 자기 회사와 최고경영자(CEO)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만큼 참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노골적인 식사와 접대 등의 요구에도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보좌진의 갑질은 국정감사 때 정점을 찍는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실 B보좌관은 올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 한 피감기관을 네 차례 방문해 국감 자료를 요청했다. 그는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요청한 자료를 훑어보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담당자들을 수시로 호출해 따져 물었다. 개인정보가 담긴 민감한 자료도 전부 가져오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기본이었다.

B보좌관의 못된 행태는 19대 국회 때는 더욱 심했다. 국감을 앞두고 피감기관에 한 트럭 분량의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피감기관 직원들은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복사기를 임대하고 아르바이트생을 10명이나 고용해야 했다. 이 기관 관계자는 “국감이 다가오면 기관 전체가 이 보좌관 공포증에 시달릴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보좌관들의 갑질도 수그러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근절될 것으로 보는 기업 관계자들은 거의 없다. 한 관계자는 “보좌관들의 갑질은 국회의원들보다 자잘하지만 훨씬 많다”며 “김영란법 시대에 갑질 행태가 어떻게 나타날지 오히려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