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폭탄’ 우려로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11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 서울지역본부 상황실에 전력수급 현황이 표시돼 있다. 이날 오후 2시20분께 전력 예비율은 8.1%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전기료 폭탄’ 우려로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11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 서울지역본부 상황실에 전력수급 현황이 표시돼 있다. 이날 오후 2시20분께 전력 예비율은 8.1%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11일 발표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한시적 완화방안은 현행 6단계 골격을 유지한 채 누진 단계별로 같은 요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을 50㎾씩 넓혀 전기료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7~9월 한시적으로 적용하되, 지난 7월분에 대해서는 8월 말 배부되는 고지서에 소급 적용해 요금을 낮춰 주기로 했다.

◆얼마나 할인받나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에어컨을 틀지 않는 봄·가을 기준 도시 4인 가구의 평균 전력사용량은 342㎾다. 사용량에 따른 전기요금(5만3000원)에 부가가치세(10%), 전력산업기반기금(3.7%)을 합한 실제 총 청구액은 6만261원이다. 여기에 소비전력 1.84㎾인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네 시간씩 한 달 틀면 전력사용량은 562.9㎾, 전기료 청구액은 18만7510원으로 올라간다.
[전기료 누진제 '논란'] 에어컨 하루 4시간 틀면 월 전기료 기존보다 3만6880원 절감
이번 개편안을 적용해 이 가구의 예상 청구액을 다시 계산하면 15만630원으로 현행보다 3만6880원(24.4%)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하루에 스탠드형 에어컨 여덟 시간을 트는 전력 다소비 가구의 경우엔 절감효과가 상대적으로 적다. 전력사용량 551㎾ 이상 구간에서는 개편안 적용에 따른 전기료 할인액이 3만6880원으로 같아서다. 현재 하루 여덟 시간 에어컨을 트는 가구의 한 달 전력사용량은 783.6㎾, 전기료 청구액은 36만4977원이다. 3만6880원이 할인되는 개편안을 적용한 청구액은 32만8097원으로 기존보다 12% 줄어드는 데 그친다.

산업부가 발표한 누진제 완화 방안은 전력사용량 550㎾를 기점으로 할인율이 꺾이는 구조다. 550㎾까지는 할인액이 계속 증가해 4만3300원에 달하지만, 1㎾를 더 써 사용량이 551㎾가 되면 할인액은 3만6880원으로 갑자기 줄어든다. 550㎾까지는 누진 5단계 기본요금인 7300원이 적용되는 반면 551㎾부터는 기본요금 1만2940원이 부과돼 구간 기본요금 증가분이 할인액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매번 무산된 누진제 개편 논의

누진제 한시 완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부터 산업부 등 관계부처에 누진제 개편을 여러 차례 건의하고 개편 방안을 함께 검토해 왔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 결정권한이 정부에 있어 공식적인 의견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과거부터 누진제 개편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왔다”고 말했다.

정부도 그간 누진제 완화 의사를 수차례 내비쳤다. 옛 지식경제부(현 산업부)는 2009년 에너지 수요관리대책을 내놓으면서 6구간으로 돼 있는 누진 단계를 3~4단계로 축소하고, 최고·최저단계 요금 차이인 누진 배율을 대폭 줄이는 방안을 검토했다. 지난해에도 당시 윤상직 산업부 장관(현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분명히 누진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누진제를 완화할 의사가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정부의 누진제 완화 검토는 그때마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공염불’에 그쳤다. 누진제 완화의 역진성으로 인해 자칫 전력 사용량이 많은 고소득층의 전기료 부담을 전력 사용량이 적은 저소득층에 전가할 수 있다는 ‘부자감세’ 논란을 의식한 탓이다. 누진제 완화로 전력 소비량이 얼마나 증가할지 정확한 예측치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국민에게 ‘잘못된 신호’를 줬다가 블랙아웃(대정전) 등 전력대란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컸다.

◆한시적 땜질만 반복

결국 정부는 국민의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여름철에 맞춰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법을 내놓는 데 그쳤다. 산업부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지시에 따라 누진제 4단계 구간에 3단계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기료를 깎아주는 특례를 7~9월 한시적으로 시행했다.

올해는 20여년 만의 폭염에 국민 불만이 폭발 지경에 이른 만큼 과거처럼 땜질식 대책을 내놓는 식으로는 쉽게 넘어가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누진제 개편을 포함한 전기료 조정안이 나오면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산업부 장관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오형주/김재후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