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신호 지킨다고 한국만 건널목에 서 있는 꼴이다.”

뉴욕의 한 외교전문가는 미국 대선을 앞둔 한국 외교당국의 움직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은 물론 중국과 일본, 인도, 국교가 없는 대만까지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물밑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다른 국가들이 ‘무단횡단’을 일삼는 걸 보면서도 신호등만 바뀌기를 기다린다는 지적이다. 오는 11월 선거에서는 미국의 차기 대통령만 뽑는 것이 아니다. 상원 의원 전체 100명 중 3분의 1인 34명과 하원의원 435명도 선출한다.

미 선거에 외국 공관이 ‘공식’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인물에 물밑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도 대선 결과 못지않게 상·하원의 주도권을 누가 갖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민주, 공화당의 대선 후보 못지않게 상·하원에서 한국의 이익을 관철시킨 유력 인사를 적극 지원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에 대비한 ‘플랜B’로 상원외교위원장이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측근인 밥 메넨데스 민주당 의원을 당선시키는 데 일조해 ‘친한파’로 묶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메넨데스 의원은 한인이 밀집해 있는 뉴저지가 지역구다.

뉴욕의 한인단체 관계자는 “외교당국은 ‘그건 동포사회가 할 일’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지만 트럼프 당선 시 강경 일변도로 예상되는 한반도 전략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 유력 인사를 확보하는 것은 한국에 절대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후보가 당선되면 더할 나위 없는 활용 가치를 갖는 것은 물론이다.

일본과 인도 등은 자국 외교와 통상에 유리한 인물을 당선시키려고 자국 교민사회와 민간단체, 로비회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공공연하게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인물을 낙선시킨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게 현지 외교가의 전언이다.

이 중에는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인 일본계 마이크 혼다 의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 의원은 미 의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결의안을 이끌어 낸 인물이다. 이 때문에 한인사회에서는 혼다 의원 낙선 시 “한국을 지원했다고 정치 생명이 위태롭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동석 뉴욕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는 “미 정치권에서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이유는 ‘유대인을 거스르면 선거에서 반드시 떨어뜨린다’는 위협이 통하기 때문”이라며 “미국 선거는 세계 각국이 미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 창구를 확보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터”라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