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사드 반발, 北 틈벌리기 공세…'강력 대북 메시지' 진통예상

북한의 연초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에 따른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후 6자회담 당사국 외교수장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아시아 지역 최대의 연례 외교 이벤트이자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비롯한 아세안 관련 연쇄회의에서다.

북한 외교수장인 리용호 외무상도 참석한 가운데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24∼26일 열리는 이번 연쇄회의는 국제사회의 북핵 공조 결집력을 가늠해보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270호의 도출 및 이행, 각종 독자제재 등을 통해 '국제사회 대(對) 북한'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고 보고 압박의 고삐를 조여왔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과 필리핀과 중국간 분쟁에서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국제 중재재판 이후 미중간 남중국해 갈등 격화 등으로 대북제재 공조의 이완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런 점에서 외교가의 일차적 관심은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ARF 외교장관회의를 비롯해 아세안 관련 연쇄회의에서 북핵 및 대북제재와 관련해 얼마나 강력한 목소리를 내줄지에 쏠려 있다.

자칫 사드와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북핵 및 대북제재 이슈가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정부는 최근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의장성명에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간 것을 두고 "중·러의 북핵 불용 및 안보리 결의 이행 의지는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지난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와 19일 총 3발의 노동 및 스커드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안보리가 전례와 달리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 사드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중러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리용호 외무상은 이 같은 미묘한 정세를 틈타 공세적 행보로 북핵공조 틈벌리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북한은 동북아지역의 평화 안전을 수호할 용의가 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노력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며, 사드 문제를 적극 거론해 한미 대 중러, 한중간 갈등의 불씨를 키우려 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북한이 이달 초 정부대변인 성명에서 주한미군 철수 등 5가지 전제조건을 붙인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수년 만에 처음으로 언급한 점이 주목된다.

리 외무상이 한미가 수용하기 불가한 조건이 붙은 '조선반도 비핵화' 같은 레토릭을 내세워 대화를 강조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중립외교 전통이 강한 아세안을 우군으로 확보하는 전략을 통해 판 흔들기를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리 외무상은 미국이 김정은 노동당 국방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수뇌부를 인권문제와 관련해 제재대상에 올린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최근 북한 핵·미사일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하고 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의장성명이 채택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의 모멘텀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전날 출국에 앞서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이번 회의에 대해 "금년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문제, 남중국해 문제, 테러 문제 같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이번에 많이 논의될 것"이라면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철저하게 이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참가국 대부분의 외교장관들이 발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현재 문안 협상이 진행 중인 ARF 의장성명에 강력한 대북 메시지를 넣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사드와 남중국해 문제로 더 복잡해진 정세와 이번 아세안 관련 연쇄회의 의장국이 북한과 가까운 라오스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의 북핵 관련 문안이 채택되기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비엔티안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