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르바트 전 대통령 단독인터뷰 "21세기에 핵으로 안보지키는 것은 낡은 방식"

푼살마긴 오치르바트(74) 전 몽골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핵·경제 병진 노선에 대해 "실현 불가능하다"며 "북한이 경제발전을 이루려면 비핵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몽골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오치르바트 전 대통령은 지난 7일 울란바토르 시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단독인터뷰를 갖고 북한의 정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같이 피력했다.

그는 1990년 3월 한국과 몽골의 수교를 결정하고 1991년 몽골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방한하는 등 26주년을 맞은 양국관계 발전에 주춧돌을 놓았다.

현재도 자주 한국을 찾는 등 친한파·지한파 인사로서 양국관계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는 "북한이 핵 개발만 고도로 할 것이 아니라 경제를 높은 수준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주변국과 외교관계, 경제협력 관계에 집중적으로 신경써야 한다"며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는 이같은 경제협력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2월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안보는 핵이 아닌 두둑한 지갑에서 나온다.

북한은 주민을 배불리 먹이고 싶다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피력, 박근혜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치르바트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사람(개인)의 안보에서 국민의 안보가 시작되고 국민의 안보가 국가의 안보가 된다"며 "북한이 안보를 지킨다고 핵 부분에만 집중적으로 신경 쓰고 있지만, 국가의 안보는 국가의 경제로 평가되기 때문에 핵 중심의 안보보다 주머니 안에 있는 지갑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20세기 이전에는 군사의 힘으로 안보를 지켜왔지만 21세기인 지금 예전처럼 무기와 핵으로 국가 안보를 지키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낡은 방식"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같은 발언은 그가 1992년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몽골의 '비핵지대화'를 선언하는 등 몽골의 비핵화를 주도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개혁·개방을 위한 결단도 촉구했다.

'북한의 철도 네트워크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김일성 전 주석의 발언을 소개한 뒤 "한민족은 아버지, 할아버지 등 조상의 말을 잘 듣고 사상을 계승하는 전통이 있다.

현 지도자도 할아버지의 정책과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아 러시아, 중국, 유라시아와 철도를 연결하는 것이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북한의 철도 네트워크는 현재 다 갖춰져 있으므로 투자나 시간이 전혀 필요 없고 열어서 연결만 하면 된다"며 "여기에는 다만 지도자의 똑똑한 결정과 강력한 결단만이 필요할 뿐"이라며 개혁·개방에 관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1990년 초대 대통령(간선)으로 선출된 뒤 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했으며 1992년 2월 신헌법을 만들어 70여 년간 지속해 온 공산주의를 포기하며 몽골의 자본주의와 개방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그는 몽골이 추진하는 '초원의 길' 프로젝트를 확대해 한반도와 중국, 몽골, 유럽을 철도로 잇는 '신(新)실크로드 익스프레스'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출발해 중국과 몽골, 러시아를 거쳐 베를린, 파리까지 철도로 연결한다면 남북한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큰 발전의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한반도와 동북아가 유라시아 대륙의 경제 발전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몽골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한반도 통일 지지 몽골포럼'을 출범시켜 한국의 대북 통일정책 지지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오치르바트 전 대통령은 '비핵화'를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북 정책에 대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며 지지 의사를 표시한 뒤 "정치와 무관한 비정부기구(NGO) 단체들, 문화예술계 인사, 한국과 관련있는 인사들이 참여하는 통일부문 NGO를 만들어 국민간 외교를 발전시키고 통일 부문에도 역할을 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올가을에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초청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비핵국가와 발전'이란 주제의 포럼에 참석, 핵실험과 핵의 위험성 등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남북 통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람은 말로, 짐승은 다리로"란 몽골 속담을 소개한 뒤 "한 걸음씩 맞춰 나가고 안 맞는 부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한국에 관한 에피소드를 꼽아달라는 요청에 "1991년 노태우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담하며 양국관계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것과 2010년 회상록의 한국어판이 출판됨으로써 몽골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한국어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답변했다.

양국관계가 수교 26년간 매우 폭넓은 분야에서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평가한 그는 "양국민은 뿌리와 조상이 가깝다.

성격적으로도 남에게 친절하고 자국 역사와 문화, 전통에 자부심이 강하고, 부모님을 잘 모시는 등 공통점이 매우 많다"고 강한 친근감을 드러냈다.

또 한국의 발전에 대해 "한국인들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해서 환경을 만들어나갔기 때문"이라며 한국인들은 매우 부지런하다고 칭찬했다.

박 대통령의 몽골 방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이룬 양국 발전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는 방문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며 강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이어 "몽골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한국은 기술을 갖고 있다"며 양국간 경협의 방안으로 한국이 투자해 몽골의 지하자원을 가공하는 신기술을 도입하고 러시아와 중국의 가운데에 몽골의 자유무역지대를 조성해 한국 제품을 면세로 판매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에는 다른 나라의 정상이 방문하면 자국의 희망 사항을 위주로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는 지났다며 "몽골과 한국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우호적인 협력 방식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란바토르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j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