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 권익위 권고에 '배우자의 子'로 지침 변경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정봉용(46)씨는 5년 전 재혼해 새 가정을 꾸렸다.

자신의 자녀 둘과 부인이 데려온 자식 둘이 함께 살기로 했다.

그렇게 식구는 여섯이 됐다.

그런데 정씨는 올초 다자녀 혜택을 알아보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녀가 넷이기에 한국전력에 다자녀가정 요금 할인을 받으려고 신청했다가 '시스템상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부인이 발급받은 주민등록등본에 자신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둘의 관계가 '동거인'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재혼 가정이라 그렇게 표기됐단 것을 알리기 위해 본인과 부인의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제출했으나, 한전 시스템상 자동으로 혜택이 제한되니 매달 가족관계를 갱신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친권도 있고 실제로 한집에서 여러 자녀를 키우고 있는데도 행정문서 때문에 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정씨 부부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 일이 있고 정씨는 몇 해 전 딸이 초등학교에서 겪은 경험도 떠올랐다.

학교에 등본을 제출할 일이 있었는데, '동거인'으로 표기된 것을 보고 교사가 딸에게 자초지종을 물은 것이다.

한참 사춘기에 있던 아이가 상처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정씨는 4일 "요즘 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차별이 남아있는 것은 문제"라면서 "재혼이 죄도 아니고 아이들이 더는 상처를 받지 않도록 문제를 제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달 14일과 지난 5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각각 '등본에 재혼한 배우자의 자녀가 동거인으로 표기되는 것은 차별 요소가 있다'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이와 관련, 2013년에 이미 행정자치부에 '동거인'이 아닌 '부(夫)의 자(子)' 또는 '처(妻)의 자(子)' 등으로 표기하는 방안을 권고한 바 있다는 내용과 다자녀 혜택 불가 문제는 한전과의 합의를 통해 해결이 됐다는 점을 안내했다.

다만, 자(子)로 표기할 경우 재혼가정의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재산 상속 문제 등으로 민법상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익위는 이날 행정자치부로부터 오는 8월 중 재혼한 배우자의 자녀를 등본상 '동거인'이 아닌 '배우자의 자(子)'로 표기하도록 지침을 변경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답변을 받았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이 건을 위원회에 상정한 뒤 결과를 정씨에게 알려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씨는 권익위의 권고안이나 권익위의 권고를 수용한 행자부의 이번 결정을 절대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정씨는 "내가 키우는 아이를 그냥 '자'로 표기하면 왜 안 되는 건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어디에서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말도 안 되는 표기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차별이 바로잡아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양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suk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