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대선 1년6개월앞…"지금 지지율 1위라고 안심못한다"
朴대통령은 그때부터 지지도 1위 달리다 결국 먼저 '골인'

내년 12월20일 치러지는 차기 대선이 20일로 꼭 1년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4·13 총선이 끝나고 정치지형의 변화가 일어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말 방한때 대선 출마 의지를 우회적으로 피력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권을 향한 열기가 물밑에서 서서히 가열되는 양상이다.

여론조사 기관들도 정기적으로 차기 대권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관심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들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지지도가 수위를 달리고 있고,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도는 야권 후보 1위를 놓치지 않는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향후 1년6개월의 '장기 레이스'동안 지지도의 등락은 거듭될 것인만큼 지금의 지지도 판도로는 대선 결과를 섣불리 전망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역대 대선 결과를 살펴보면 선거 1년 반 전에 선두를 달리던 대권주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경우는 별로 없었다.

거꾸로 대다수 대통령들은 대선 1년반 전만 해도 지지율 측면에서 2등 이하에 머문 '언더독'(Underdog, 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 이었으나 저마다 선두를 꺾고 역전극을 펼치며 대권을 손에 넣었다.

그만큼 민심의 흐름은 역동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제15대 대선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20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5대 대선으로부터 약 1년 8개월 전 시점인 1996년 4월만 해도 여당인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35% 안팎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렸다.

반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2위를 달리긴 했지만 지지율이 1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어서 1위와는 격차가 컸다.

그러나 이후 이회창 후보는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 이인제 후보의 당내 경선 불복과 탈당 등 여권 분열에 시달리며 지지율 하락으로 돌아선 반면, 김대중 후보는 지지율을 꾸준히 끌어올리며 상황을 역전시켰다.

비록 대선 막판에 신한국당 강삼재 의원이 비자금 사건을 폭로하면서 위기를 맞긴 했으나 검찰은 비자금 수사 착수를 대선 이후로 연기했고, 김대중 후보가 결국 대권을 잡았다.

제16대 대선 역시 지지율은 대선까지 1년반동안 '롤러코스터'를 탔다.

대선으로부터 약 1년 반 전인 2001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이었던 노무현 후보를 한나라당에서는 위협적인 대항마로 여기지 않았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추세를 보이자 젊은 층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과 영남에서 지지표가 잠식될 가능성을 눈여겨보기는 했으나 전국적인 지지도가 낮아 대선후보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는 이듬해 3월 국민경선제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며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키웠고 경선이 끝난 그해 4월 말에는 지지율이 60%대를 기록하며 대반전 드라마를 썼다.

제17대 대선의 주인공인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선거 1년 반 전인 2006년 6월에는 지지도에서 3등에 머물렀었다.

당시에는 박근혜 당시 의원과 고건 전 총리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후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고 전 총리는 '앉아서 기다리는 정치'라는 지적을 받을 만큼 소극적인 행보를 보인 탓에 지지율이 하락한 반면, 이명박 후보는 서울시장 퇴임 후 '한반도 대운하 건설' 프로젝트 등 구체적인 공약을 밝히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다만 제18대 대선의 경우 선거 1년 반 전 시점에 박근혜 당시 후보가 선두를 달리며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후 이른바 '안풍(安風)'으로 불리던 안철수 열풍이 본격화되고, 야권의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로 접전이 펼쳐졌으나 박 후보는 확고한 지지층을 바탕으로 흔들리지 않고 결국 골인 지점에 먼저 들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ykb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