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고용숙 부부 "김정은 8살 생일에 장군복 선물받아…그때부터 권력승계 조짐"
"핵·군사 쪽은 몰라…북미간 협상가 역할 가능할 수도" 주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모인 고용숙과 그의 남편 리강은 자신들이 북한의 국방 관련 분야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면서도, 자신들이 북한과 미국을 이해하기 때문에 북·미 양자 간 협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용숙·리강 부부는 27일(현지시간)자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그들(미국 정보당국)은 우리가 어떤 (북한 정권의) 비밀 같은 것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아는 게 없었다"고 밝혔다.

리 씨는 "물론 (김정은 위원장의 유년기) 사생활에 대해서는 많은 걸 봤지만, 국방 쪽과 관련된 일은 아는 게 없었다"며 "핵무기나 군사 분야와 관련해서는 하나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고 씨는 김 위원장의 생모 고용희 씨의 여동생이다.

이들 부부는 1998년 미국으로 망명했고, 그동안 자신들의 생활을 공개하지 않아 왔다.

이들은 북한에서 생활할 때 '로열 패밀리'로서의 특권을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이와 관련해 "그들의 큰아들이 (북한) 원산의 (최고지도자용) 여름 별장에서 제트스키를 타는 사진과,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앨범"을 그들의 현재 거주지에서 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1992년 김 위원장의 형인 김정철과 함께 스위스 베른에서 살기 시작했던 고용숙·리강 부부는 김 위원장이 12세 때인 1996년부터 약 2년간 김 위원장의 생활을 보살폈다.

고 씨는 이와 관련해 "우리는 보통 가정처럼 행동했고, 나는 그들(김 위원장 형제)의 어머니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어린 시절에 대해 고 씨는 "말썽꾼은 아니었지만, 성질이 급했고 인내심이 없었다"고 회고하며, 김 위원장의 어머니가 그만 놀고 공부를 더 하라고 꾸짖자 김 위원장이 단식투쟁으로 맞섰던 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농구를 하기 시작하자 점점 빠져들었다"고 전한 고 씨는 김 위원장이 "농구공을 갖고 잠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어머니 역시 또래보다 키가 작았던 김 위원장이 농구를 하면 키가 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고 씨는 전했다.

이들 부부는 김 위원장의 8세 생일잔치 때 계급장이 달린 장군 제복을 선물로 받았고 군 장성들이 그때부터 어린 김 위원장에게 경례하는 등 진짜로 경의를 표했다며, 그 당시부터 이미 권력승계 조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 씨는 "주변 사람들이 그(김 위원장)를 그렇게(권력자처럼) 대하는 상태에서 그가 보통 사람으로 성장하기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지도자와 가까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말썽에 휘말리는 일을 종종 볼 수 있으며, 우리는 그런 말썽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며 북한 정권 내부에서의 암투 가능성 때문에 탈북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WP는 이들 부부가 1998년 스위스 베른의 미국 대사관으로 진입해 망명을 신청했고, 며칠 뒤 프랑크푸르트의 미군 기지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몇 달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들과 북한 지도자와의 관계를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들 부부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뒤 워싱턴DC 인근에 거주지를 정했지만 한인들의 지나친 관심과 "계속되는 질문" 때문에 아시아계 주민들이 거의 없는 곳으로 이사했다고 밝혔다.

WP는 이들 부부가 처음 정착할 때 미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이들 부부의 현재 거주지와 미국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았다.

고 씨와 리 씨의 두 아들은 현재 32세와 29세고 딸은 23세라고 이 신문은 밝혔다.

여전히 영어 구사가 초보 수준인 고 씨는 "친척이나 아는 사람도 없었고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해야 했다"며 "처음에는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시민권자인 고 씨와 리 씨가 그동안 은둔 생활이라고 불릴 정도로 언론 접촉을 기피했다가 이번에 WP와 인터뷰를 하게 된데 대해 리 씨는 "궁극적 목표는 북한으로 돌아가는 일"이라며 언젠가 북한을 방문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북한의 '친척'과 관련해 한국에서 돌고 있는 "거짓말"을 해명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고 씨는 최근 한국 법원에 한국에서 활동하는 탈북자 3명을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피고의 주소를 원고측이 파악해야 하는 절차 때문에 이 소송은 법원에서 지난 3월 각하됐다.

리 씨는 또 "나는 미국을 이해하고 북한을 이해한다. 따라서 나는 그 둘 사이의 협상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김정은(위원장)이 내가 기억하는 대로라면 그와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WP는 이런 리 씨의 주장과 관련해 북한문제 전문가인 알렉산드르 만수로프 미국 존스홉킨스대 겸임교수의 말을 인용해 "미국에서 잘 살고 있는 그들이 '위쪽 계층으로' 올라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왜 (북한으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겠냐"고 전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세진 특파원 smi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