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충원 참배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앞줄 왼쪽)와 더민주 20대 총선 당선자들은 14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연합뉴스
< 현충원 참배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앞줄 왼쪽)와 더민주 20대 총선 당선자들은 14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연합뉴스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을 내주고도 원내 제1당이 됐다. 선거 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107석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대표를 사퇴하겠다고 했으나 123석을 얻었다. 부산·경남(PK) 지역에서 8석을 획득했고, 서울 강남을에도 ‘깃발’을 꽂았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 대한 반사이익이라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지역구 후보는 더민주, 정당 비례대표는 국민의당을 선택하는 야권 지지 성향 유권자들의 교차 투표가 위력을 발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텃밭 호남을 국민의당에 내줘 ‘반쪽 승리’라는 평가도 있다.

1 '교차투표'의 위력 후보는 더민주, 비례는 국민의당

더민주는 막판 선거 전략으로 교차 투표를 유도했다.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정당 투표를 다르게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더민주가 국민의당 지지자를 향해 “이길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달라”며 ‘지역구 후보는 더민주를, 정당은 국민의당’을 찍어달라는 전략적 선택을 주문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더민주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구에서 82석을 얻었다. 수도권 전체 122석의 약 67%다. 국민의당은 두 석을 얻은 데 그쳤다.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는 국민의당은 전국적으로 26.74%를 얻어 더민주(25.54%)를 앞섰다. 서울에서 국민의당은 28.82%를 득표해 더민주(25.93%)보다 2.89%포인트나 많았다.

유권자들의 정당 투표와 지역구 득표수를 살펴보면 지역구에서 새누리당과 더민주를 선택한 약 405만명의 유권자가 정당 투표에서는 다른 당을 선택했다. 새누리당은 지역구에서 총 920만여표를 얻었고, 정당 투표에선 796만여표를 득표했다. 지역구에서 새누리당을 선택한 유권자 중 124만여명이 정당 투표에선 다른 당을 찍었다는 뜻이다.

더민주의 지역구 총 득표수는 888만여표, 정당 투표 득표수는 약 607만표다. 281만명가량의 유권자가 정당 투표에선 더민주를 선택하지 않았다. 반대로 국민의당은 지역구에서 총 356만5000여표를 얻었고, 정당 투표에선 635만5000여표를 득표했다. 정당 투표가 279만표가량 많다. 유용화 정치평론가는 “유권자가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스스로 후보 단일화를 하는 전략적인 투표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2 '산토끼 잡기' 전략 김종인 보수적 활동 '외연 확대'

김 대표는 더민주에 영입된 뒤 중도층 잡기 전략을 폈다. 이른바 ‘산토끼(부동층) 잡기’다. 지난 1월 취임한 김 대표는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해 ‘북한 궤멸론’ ‘햇볕정책 수정론’ 등을 강조했다. 정장선 더민주 총선기획단장은 14일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시점에서 보수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북풍(北風·북한발 변수)’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지난달 7일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조가 사회적 문제에 집착하면 근로자 권익 보호가 소외될 수 있다”고 비판한 것도 중도· 중산층 잡기의 일환이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행보에 더해 김 대표가 당내 운동권·친노(친노무현) 강경파 성향 의원들의 공천 배제를 결정하자 주류 진영에선 “핵심 지지층을 다 놓칠 수 있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김 대표의 이런 행보가 더민주의 외연 확장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3 '경제 심판론' 효과 경제 불만 쌓인 중산층 유인

정 단장은 “현 정부의 경제 실패와 취업난 등으로 불만이 쌓인 젊은 층과 40~50대 중·장년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냈다”고 진단했다. 당의 한 관계자도 “경제 심판론을 전면에 부각시킨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더민주 입당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제는 경제다. 정답은 투표다”라는 총선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고 현 정부의 경제 실패를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새누리당이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해 ‘양적 완화’ 등 경제 이슈를 내놓으며 맞불을 놨지만 뒤늦은 대응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당 관계자는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이 새누리당에 등을 돌린 것은 경제 심판론이 먹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전통 텃밭이던 서울 강남을에서 전현희 더민주 후보가 승리한 것은 이런 기류와 관련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의 나빠지는 경제가 유권자들로 하여금 집권여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4 '與 갈등' 반사이익 "더민주가 잘했다기보다는…"

더민주는 유권자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공약이나 이슈를 내놓지 못했다.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김 대표의 ‘셀프 공천’, 친노 운동권 세력 상위 순번 배정 문제 등을 놓고 내홍을 겪었다. 그런데도 선전한 것은 상대적으로 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이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신율 교수는 “딱히 더민주가 뭘 잘했다기보다 현 정권에 대한 불만과 함께 새누리당의 ‘막장 드라마식 공천 갈등’이 더민주에 반사이익을 안겨줬다”고 분석했다.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호남 민심을 어떻게 잡느냐다. 내년 대선을 위해 텃밭인 호남 민심을 어떻게든 끌어안아야 한다. 김 대표에게 힘이 실리겠지만 현실적으로 당내 최대 계파는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친노계다. 새 지도부를 선출할 전당대회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 둘 사이의 역학관계에 당의 구심력이 커지느냐 여부가 달렸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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