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선 굵은 리더십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국 정치사의 한축을 담당했던 거대 계파인 상도동계를 이끌었다. ‘YS 문하생’으로 불리는 상도동계 인사들은 가신그룹을 형성하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차례차례 성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이회창 전 국무총리 등도 김 전 대통령이 발탁해 정계에 입문시킨 인물들이다.

○민주화 꽃피운 상도동계 대부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 한가운데에는 상도동계가 있다. 1984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전두환 정권에 맞서기 위해 결성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김대중)계가 양대 세력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상도동계 출신의 대표적인 정치인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김 대표는 1987년 김 전 대통령이 창당한 통일민주당(당시 야당)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당 총무국장 등을 지내며 김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새누리당 내 친박근혜계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상도동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재야에서 활동하던 시절 최측근으로는 ‘좌(左)동영, 우(右)형우’로 불린 고 김동영 전 의원과 최형우 전 의원이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정의화 국회의장, 이완구 전 총리,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등 ‘15대 총선 동기’들도 대표적인 상도동계 정치인이다. 홍 지사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찾아가 “15대 총선 때 당선된 우리들은 다 YS 키즈(kids)”라며 큰절을 하기도 했다. 야권 내 잠재 대선 주자인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도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14대 국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가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최형우 전 의원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가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최형우 전 의원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거물 정치인 키워낸 ‘용인술 9단’

김 전 대통령이 발굴한 정치 신인 중에는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있다. 정치 상황에 맞춰 참신한 인물을 발탁, 정치지형 변화를 꾀했다. 한 상도동계 출신 인사는 “사람을 뽑는 눈도 눈이지만, 그 사람을 어디에 쓸지 정확히 판단하는 용인술 9단이었다”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1988년 4월 당시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을 이끌던 김 전 대통령에게 영입돼 부산 동구 국회의원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자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바람을 일으키자 현대가(家)의 사람으로 ‘샐러리맨 신화’의 상징이었던 이 전 대통령을 영입해 맞불을 놓았다.

세 차례 대권 도전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셨던 이회창 전 총리도 김 전 대통령이 발굴한 정치인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대법관이던 이 전 총리를 감사원장에 임명한 데 이어 총리에 중용했다. 1997년 대선에 출마했던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김영삼 정부에서 최연소 노동부 장관을 거쳐 경기지사에 당선되며 대선 주자로 몸집을 키웠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