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나선특구 개발계획을 발표한 배경에는 외국 투자 유치에 대한 절박감이 반영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91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된 나선특구는 24년 동안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못해 이름만 남아있다.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한 데다 핵개발에 따른 UN 제재에 가로막혀 해외 자본이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 "나선특구, 18조 유치 물류·관광 허브로"…투자 받을 기업 공개
김정은 집권 이후 발표한 총 19개의 경제개발구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북·중 투자가 끊긴 데다 러시아 경제 위기도 북한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외자 유치를 통한 나선특구 활성화로 숨통을 트려는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 북·중 관계가 가까워진 것도 북한이 과감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게 된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발표도 중국과의 사전 조율 결과라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은 지난달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을 북한 열병식에 파견했고 북·중 접경지역인 동북 3성에 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근 북·중관계가 풀리고 있고 훈춘~나선을 연결하는 다리가 내년에 완공돼 북한이 중국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며 “내년 5월 초 7차 당대회를 앞둔 김정은이 경제부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려는 구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계획이 외국인 투자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나선특구 개발계획에서 외국 기업에 대한 ‘특혜’를 강조하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했다. 특히 나선특구 투자자가 경제무역지대에서 얻은 합법적 이윤과 이자, 배당금 등 소득을 제한없이 북한 밖으로 송금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기업의 독자적 경영권도 보장했다. 투자기업은 경영 및 관리질서와 생산계획, 판매계획, 재정계획을 세울 권리, 채용, 생활비 기준과 지급 형식, 생산물의 가격, 이윤의 분배방안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폐쇄적인 체제와 경영간섭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또 나선경제특구 내 세금을 거래세, 영업세, 기업소득세, 개인소득세, 지방세, 재산세, 상속세 등으로 규정하고, 구체적인 세율과 우대정책을 제시했다. 나선특구를 외국 자본에 본격적으로 개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이 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 간의 합작투자 계획을 밝힌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번 계획에서 언급된 선봉피복공장, 나진영예군인일용품공장 등 합영투자기업들은 2002년 공장과 기업소에서의 자율성을 확대한 ‘7·1조치’ 발효 이후 나선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북한 기업가인 ‘돈주’들도 충분히 특구에 공동으로 투자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도 전력, 도로 등 기반시설에 대한 선(先)투자 계획이 없다는 점은 불안요소로 지적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나선지구의 전력사정이 열악한 데다 신규 대북 투자를 금지한 5·24 제재조치로 한국의 투자도 받을 수 없다는 점이 한계”라고 말했다.

전예진/김대훈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