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단임(短任) 및 단임(單任)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은 일한 지 1년 남짓이면 바뀐다. 공기업은 물론 주인 없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단임 임기(3년)를 마치면 물러나야 한다. 정부부터 기업까지 장기 전략이 실종된 채 단기 성과주의만 난무하는 것도 한국 사회가 단임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대론 대한민국 미래 없다] '單任·短任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한국경제신문이 11일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기획재정부(옛 기획예산처 포함)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행정자치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중앙부처 9곳에서 장관(위원장 포함)을 지낸 120명의 재임 기간을 조사한 결과 평균 15개월로 나타났다. 이 중 52명(43.3%)은 1년도 안 돼 교체됐다.

장관이 바뀌면 차관은 물론 실·국장 등 고위 공무원까지 줄줄이 갈린다. 행자부에 따르면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53.3%(2013년 기준)는 한 자리에서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다른 보직으로 이동했다.

이런 현상은 공기업과 이른바 ‘유사 공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전력 산업은행 등 공기업 CEO는 성과에 관계없이 단임이 원칙이다. 그나마 단임 임기도 못 채우고 낙마하는 사람도 많다. 포스코 KT KB금융지주 등 민영화돼 주인이 없는 유사 공기업 CEO도 마찬가지다. 가까스로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어김없이 중간에 낙마한다.

‘단임(短任) 및 단임(單任)의 늪’ 폐해는 많다. 관료들이나 CEO는 절대 모험을 하지 않는다. 투자는커녕 장기 전략도 마련하지 못한다. 그저 사고 없이 무사안일하게 지내다가 임기를 채우는 데 급급해 한다.

아니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단기 성과를 내려 한다. 다른 좋은 자리로 이동하거나 연임을 위해서다. 이들이 퇴진한 다음 대규모 부실이나 손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성향을 잘 아는 조직원들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바뀌겠지’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혁신이나 발전이 있을 리 없다. 잘해야 현상 유지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인 데다 장수 CEO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가 이런 현상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임기 5년 이내에 정치·경제적 성과를 내려다 보니 장관 재임 기간도 짧아지고, 관료 및 공기업 CEO 임기가 연쇄적으로 짧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논공행상을 위해 임기 후반기로 가면서 인사가 더욱 잦아지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김성문 홍콩시립대 정책학과 교수는 “조직 수장이 취임하자마자 깎아내리기 바쁜 한국의 정치 및 경영문화도 한 요인”이라며 “이런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단임이라는 제도를 바꿔도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종현/이승우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