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정 첫 ‘화상 국감’ >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출연연구원장들이 8일 정부세종청사 법제처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화상 국정감사에서 화면을 통해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국감은 국회와 정부세종청사를 이원으로 연결해 헌정 사상 최초로 화상으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 헌정 첫 ‘화상 국감’ >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출연연구원장들이 8일 정부세종청사 법제처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화상 국정감사에서 화면을 통해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국감은 국회와 정부세종청사를 이원으로 연결해 헌정 사상 최초로 화상으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8일 끝난 19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역대 국감과 마찬가지로 정쟁, 막말, 엉뚱한 질의로 얼룩진 ‘부실 국감’으로 평가됐다. 특히 국회의원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 호통치고 면박을 주는 것에 대해 “대중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적인 동기가 개입된 스노비즘(snobbism·속물근성)”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치권력이 재계 리더급 인사를 국정감사장에 불러 혼낸다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만의 그릇된 관행’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국회 국정감사의 대상을 ‘행정부의 국정’에 한정해 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사안을 배제하고, 일반인과 기업인 증인 채택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구태 반복한 2015 국감] "국감에 CEO 불러 호통치는 건 '스노비즘'…세계에 유례없는 횡포"
세계 유례없는 국회의 횡포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8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연 ‘2015년 국정감사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19대 국회의 국감은 18대 국회 국감보다 물리적 폭력의 수위는 낮아졌지만 언어적 폭력의 수준은 높아졌다”며 “일부 국회의원은 저질 막말, 말도 안 되는 호통치기, 악의적 비아냥 등 울분에 찬 사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기업인을 불러 호통치는 행위에 대해 ‘스노비즘’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불러놓고 “축구 한·일전에서 한국을 응원할 것이냐”고 질의한 여당 의원,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을 ‘재벌의 하수인’이라고 평가한 야당 의원의 발언 등을 사례로 들며 “국감은 기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인을 불러내서 혼내고 막말로 야단칠 필요가 없다”며 “국회라는 정치권력이 기업이라는 경제권력을 혼낸다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관행이라서 국제적으로 좋은 모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들이 막말 국감과 부실국감을 되풀이하며 스스로 ‘국감 무용론’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특정 기간을 설정해 이벤트성으로 진행되는 국감 관행 때문에 몰아치기 국감, 정쟁국감, 망신주기 국감, 무분별한 증인채택 등 고질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인 증인 채택 어렵게 해야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국회의원들의 면책특권을 없애고 기업인과 일반인을 무분별하게 증인으로 채택하는 관행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권위주의 시대에서나 필요했던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이 없어지면 국회의원들의 발언 품위가 향상될 것”이라며 “국정감사 대상을 행정부에 한정하도록 규정하고 기업경영 관련 사항은 근본적으로 국정감사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감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국감 시기와 기간 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특정 기간에 너무 많은 피감기관을 감사해야 하는 물리적 한계를 개선하고 의정활동을 보다 세밀하게 정성화·정량화해 그 성적을 공천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스노비즘

snobbism. 자신의 힘과 위치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등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의 그릇된 행태.
속물근성으로도 해석한다. 19세기 영국에서 신사인 체하고 허세를 부리는 속물들이 많이 나타난 것을 작가 윌리엄 새커리가 작품 ‘스노브 독본’에서 희화한 이후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