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모 부장은 지난달 정부세종청사를 세 번 찾았지만 모두 헛걸음을 했다. 두 번은 만나기로 한 산업통상자원부 과장이 자리에 없었다. 한 번은 회의에 참석한 그 과장의 얼굴만 보고 말 한마디 붙이지도 못했다. 김 부장은 “담당 공무원을 30분 정도 면담하는 날은 정말 운 좋은 날이고 얼굴을 보고 서류라도 제출하면 그럭저럭 선방한 날로 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세종청사 시대가 시작된 뒤 기업도 피곤해졌다. 정부 부처와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대관 업무의 비효율성이 높아져서다. 정부과천청사 시절엔 한두 시간이면 너끈히 오갔지만 이제는 하루를 다 허비해야 한다. 세종시를 왕복하며 쓰는 교통비와 숙박비 등 비용도 과천청사 때보다 10배가량 늘었다.

돈과 시간이 더 드는 것보다 더 큰 애로사항은 공무원을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건설업체의 대관 담당자인 이모 과장이 단적인 예다. 이 과장은 각종 서류 제출이나 현안 설명 때문에 1주일에 두세 차례 국토교통부를 방문하는데 대부분 허탕을 친다. 담당 공무원의 서울 출장이 잦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은 더 얼굴을 보기 힘들다. 출근이 상대적으로 늦고, 퇴근 시간 무렵엔 찾아가면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점심시간 전후도 실례다. 그래서 대관 담당자 사이엔 오전 11시와 오후 3시가 공무원 면담의 ‘골든타임’으로 통한다. 이 시간을 두고 대관 담당자들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 과장은 “대관 담당자들은 세종시에선 무조건 ‘113 법칙’을 지켜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공무원들도 그 시간에 주로 회의를 하기 때문에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들은 대관 담당자들을 따로 보지 않고 한꺼번에 보는 일이 잦다. 대관 담당자들이 경쟁 업체를 의식해 솔직한 얘기를 하기 힘든 구조다. 정책을 세우면서 업계 의견을 듣는 회의와 공청회 횟수를 줄여 업계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은 세종시 공무원들과 접촉 횟수를 늘리기 위해 세종시에 사무실을 따로 마련했다. 중견·중소기업은 이마저도 힘들다.

중견기업의 대관 담당 임원은 “전화나 이메일로 대관 업무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직접 만나 얘기를 듣길 원하는 공무원이 많아 세종시 업무 때문에 시간을 다른 데 쓰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