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해저드에 빠진 한국] 금요일엔 '유령도시'…열정이 식어간다
매주 금요일, 세종은 ‘유령도시’로 변한다. 오후 6시만 되면 서울행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공무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1주일간 보지 못한 가족을 만나기 위한 행렬이다. 서울에 거처가 있는 공무원들은 일찌감치 KTX에 몸을 싣기도 한다. 금요일 점심이나 저녁 약속은 서울로 정하는 게 상식이다.

평일에도 ‘대이동’은 일상이다. 관련 업계 사람에게 매번 세종으로 내려오라고 할 수는 없다. 늘 그렇듯 국회와 청와대 일정은 예고없이 잡힌다. 매일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출퇴근족도 적지 않다.

한국경제신문이 8개 경제부처 과장급 이상 간부 124명에게 ‘직구’를 던졌다. 세종시로 옮긴 뒤 솔직히 정책 품질이 떨어지지 않았느냐고. 예상대로 74%라는 절대다수가 그렇다고 시인했다. 서울 출장 가는 데 평균 두 시간은 걸린다. 왔다 갔다 하면 족히 너댓 시간은 길바닥에서 날아간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장과 동떨어져 있다보니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자주 못 듣는 것도 정책이 헛다리를 짚는 요인이다. 정부 부처 간 또는 부처 내 소통도 부족해졌다. 사무실 내 옆자리 동료와도 만나기 힘들어졌다는 게 공무원들이 털어놓는 세종청사의 현실이다.

정책 추진 과정도 헐렁해졌다. “후배들 교육은 고사하고 당장 내일 내야 하는 보도자료 점검조차 꼼꼼하게 하기 힘들다”는 게 관료들의 공통된 푸념이다. 돌발 사태에 대처하기도 어려워졌다. 과천청사 시절 30분 정도면 국회나 청와대에 닿았다. 지금은 두 시간 이상 걸린다.

서울 여의도나 광화문에 가면 자투리 시간에 갈 곳이 없어 커피숍을 전전하는 고위 공무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한국처럼 정보기술(IT) 환경이 발달한 나라에서 어디서든 일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런 질문 하면 공무원들로부터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대학생 리포트 작성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잇따른 정책 대응 실패에 대한 공무원들의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일하기 힘든 환경을 만들어놓고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질책만 하는 게 온당한지는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밤샘 작업을 하느라 온종일 환하게 켜져 있던 예전 과천청사의 모습은 이젠 추억이다. 먼 길을 달려 집에 가겠다는 부하 직원을 붙잡기는 어렵다. 소주 한잔으로 다져지던 끈끈함도 옛일이다. 이런 여건에서도 과거 같은 수준의 정책이 나온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