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경DB>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경DB>
국회법 개정안 사태로 정국이 꼬일대로 꼬이고 있다. 청와대 여당 야당 모두 내·외부 파열음에 시달리고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방전을 이어가고 있다. 해법이나 출구는 커녕 협의조차 논의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함께 정국 암초였던 국회법 개정안이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누더기가 됏고, 이에 대한 책임을 급기야 여당 수뇌부에 물으면서 새누리당 내부도 분열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여 개정안을 사실상 폐기했다.

이처럼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이 사장될 운명에 놓이자 야당은 신성한 여야 합의정신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여당마저 내팽겨쳤다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개정안 자체의 생명력은 사그러들었지만 누적된 당청 간 갈등 뿐만 아니라 여야 극한 대립을 촉발시킬 파괴력은 다분히 큰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6일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여당의 재의 불가 당론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예정됐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와 정무위 법안소위 등 9개 상임위원회의 회의가 모두 열리지 못했다.

새정치연합은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메르스 관련 사안을 제외한 모든 의사일정에 불참한다는 방침이어서 국회 공전 장기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구회 공전과 파행 운영이 길어지면 여권이 추진 중인 경제활성화법을 비롯한 주요 국정 과제도 추진이 어려워진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차질도 불보듯 뻔하다. 우선 다음 달 1일 예정된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조차 열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본회의가 열리더라도 야당은 메르스 관련 추가경정예산안 이외에 다른 안건 처리는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야당 지도부의 대여 비판 기조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이날 작심한 듯 박 대통령을 겨냥한 대국민호소문까지 발표했다. 문 대표는 "정작 국민에게서 심판받아야 할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라며 "대통령은 국회와 국민을 향한 독기 어린 말을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부 무능에 대한 책임면피용이자, 국민적 질타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치졸한 정치이벤트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서 박 대통령을 향해 "(국회를) 유신시대 유정회로 만들어서 국정 실패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 같은 비판에 가급적 정면 대응을 피하면서 정국 정상화를 위해 야당을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해 밝혔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야당의 반발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야당의 반발은 십분 이해하고, 앞으로 민생이나 여러 가지 나랏일을 위해, 국민을 위해 야당도 국회를 가급적 빨리 정상화시켜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무성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블루베리 판촉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께서 지금 경제가 어려워서 민생경제를 살려보겠다고 법안 몇 개 통과시켜달라고 하는데, 야당이 전혀 협조를 안 한 게 사실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법 개정안이 박 대통령의 재의 요구와 과반 의석을 보유한 새누리당의 재의 불가 당론으로 사실상 자동 폐기가 확정됐음에도, 일단 법적 절차를 따라 다음 달 1일 본회의에 상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을 존중하는 뜻에서 재의 요구권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것을 본회의에서 재의에 부치는 게 당연하다"면서 "7월 1일 본회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쯤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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