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먼저 교차참석 타진…日 부정적 반응 보이다 어제 입장선회
朴대통령, 신중 검토 끝에 오늘 오후 최종 결정
대일메시지 '양국관계 미래지향적 발전' 방점, 과거사해결 우회적 촉구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 교차 참석은 행사 하루를 앞둔 21일 밤 전격 발표됐다.

한일 양국이 수교한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만큼 현재의 한일관계가 과거사 문제 등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음을 방증하는 장면이다.

양 정상의 리셉션 참석 결정은 발표 시기 만큼이나 전격적이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양 정상의 리셉션 교차 참석은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사흘 전인 지난 18일 "한일수교 50주년 리셉션에 양국 정상이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까 생각되고 교차참석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었다.

특히 이날 정부 소식통발(發)로 아베 총리가 도쿄에서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 리셉션에 참석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간 뒤에도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서울 리셉션 참석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밑으로는 양 정상의 리셉션 참석을 놓고 외교 라인의 의견 교환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외교 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애초 우리 정부는 기념 리셉션에 양국 정상의 교차 참석을 성사시키기 위해 일본 쪽에 의견을 타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측이 아베 총리의 의회 참석 일정을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전달해왔고,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교차참석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전날인 20일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측은 이날 아베 총리가 도쿄 리셉션에 참석할 수 있다고 달라진 입장을 우리 측에 알려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도 상황 재검토에 들어갔고 박 대통령은 신중한 검토를 한 끝에 21일 오후 늦게 리셉션 참석을 최종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진은 박 대통령에게 최근 한일관계의 '정경분리' 기조에 따라 행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박 대통령의 행사 참석 결정은 이날 오후 8시가 다 돼서야 청와대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발표됐고, 이 보도자료에는 아베 총리도 도쿄 리셉션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청와대가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청와대 외부에서 진행되는 대통령 일정을 이례적으로 발표한 것은 양국 정상의 교차참석 가능성이 예고된 상황이었고, 이번 행사가 한일관계 진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안 가려고 했는데 아베 총리가 간다고 해서 가기로 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우리가 먼저 일본 쪽에 교차참석을 타진한 것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양국이 대승적 견지에서 이심전심으로 서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결론을 낸 것"이라며 "한일이 여러가지로 관계를 풀어가는 흐름 속에서 이번 행사는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상징적인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이에 따라 각각 서울과 도쿄에서 리셉션 축사를 통해 경색된 한일관계 해소 필요성과 미래지향적 발전과 관련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양국이 수교 50주년을 맞이한 만큼 향후 50년의 미래를 내다보고 협력을 굳건히 이어가자는데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행사 자체가 양국관계의 미래 발전을 위해 마련된 자리인 만큼 과거의 갈등보다는 미래의 협력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서로 노력하자는 당부를 빼놓지 않음으로써 양국관계 경색의 주요 원인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과거사 왜곡 문제, 독도 영유권 다툼 등 과거사 및 영토 갈등 해결에 일본이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일수교 50주년과 관련, "양국이 이날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를 갖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현재 교착상태에 있는 한일관계의 실타래를 어떻게 푸느냐가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한일 양국이 이견을 보이는 사안이 있지만 현안은 현안대로 풀어나가면서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양국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방안을 찾아주시길 바란다"고 당부, 과거사·영토 갈등과는 별개로 경제·안보 등 미래협력 분야에서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서울에서 일본 정부 주최로 열린 '한.일 우정의 해 2005' 개막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도 도쿄에서 우리 정부 주최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당시 양 정상의 참석행사는 날짜를 달리한 행사였고 수교 40주년을 맞아 그해 1월에 열린 행사였던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번에 박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수교 50주년 당일 열린 행사에 동시에 교차 참석하는 것은 과거 행사들과 비교할 때 의전이나 형식면에서도 이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min22@yna.co.kr